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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Oct 05. 2021

<오징어 게임>, 이기기 위해 필요한 진짜 능력

소유하는 자 vs. 존재하는 자

최근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 글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지질함의 극치 '성기훈'은 오징어 게임의 최후 1인이 된다.


오징어 게임 최후 1인 승자가 되는 '성기훈'(이정재 역)


바닥 중의 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목숨을 내걸고 참여하는 '오징어 게임'.

그 잔혹한 서바이벌 현장에는 '사회에서 잘 먹히는' 특별함을 장착한 인물들도 꽤 모여 있었다. (싸움을 잘하거나, 특수 기술이 있거나..)


사회에서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성기훈은 어떻게 최종 우승자가 되었을까.

잘 보이지 않았던 그만의 무기, 그만의 특별함은 무엇이었나.


그가 '지질하고, 능력 없고, 못났고, 사회적 약자이고, 바닥인생'인 것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훈이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가.

어떠한 서사가 지배하는 세상인가.


나는 소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내가 더 많이 소유할수록 나는 더한 존재가 된다.

 

'내가 소유한 것'이 곧 '내'가 되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정체성은 곧바로 '찌질이, 실패자, 낙오자'가 되어 버린다.


수많은 찌질이, 실패자, 낙오자 가운데, 기훈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훈이 오징어 게임 참가자로서 증명사진 찍는 모습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판은, '소유하는 자가 곧 승자'가 된다는 강력한 룰이 지배하고 있다.

그 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그 판 위에서 '장기판의 말처럼 도구'가 되어 살아갈 것인가, '존재하는 나'로서 살아갈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기훈은 비록 '가진 것이 없는 자'로서 장기판의 '말'과 같은 존재로 취급을 받지만,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말'이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는 선택을 내린다.


#. 뒷 꿍꿍이가 없는, 관계 속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사람

상우를 만나 반가운 기훈

기훈(이정재 역)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어릴 적부터 알던 동생 상우(박해수 역)를 만나게 된다.

상우는 기훈과 달리 똑똑하고 사회에서 크게 성공했던 인재였다.

그러나 자신의 똑똑함이 독이 되어 상우 역시 오징어 게임 참가 자격을 얻게 된다.


상우는 쉽게 기훈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뒷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을 하는 중이다.

이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발목을 잡을 사람인가.


그러나 기훈은 너무나 '반갑게', 빙구미를 발산하며 상우에게 다가간다.

뒷 꿍꿍이가 없다. 그냥 얼굴을 보니 반가운 것이다. 아는 동생을 만나니 든든한 것이다. 


기훈은 사람을 대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대가를 먼저 따지고 다가가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먼저 간다. 대가와 상관없이.


기훈과 서로 조건없이 도움을 주고받는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

그래서 기훈은, 자신을 먼저 도와준 알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의 돈을 소매치기했던 새벽이 위기에 몰리자 새벽을 끝까지 도와주고,

오징어 게임 참가자 가운데 가장 최약체인 노인(오일남)을 유일하게 챙겨준다.




<오징어 게임> 속, 두 주축인 기훈(이정재 역)과 상우(박해수 역)가 사회에서 각각 '멍청함'과 '똑똑함'을 대변하는 '대립성'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설정이다. 상우는 늘 '계산'을 하고, 기훈은 '계산'을 할 줄 모른다.


'똑똑한 상우'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철저히 구분하면서, 기존 판의 룰을 철저히 따른다.



반면, '멍청한 기훈'은, 기존 판의 룰에 의해 철저히 '도구'로서 살아갈 것을 강요받지만, 기존 판의 룰을 깨며 '존재하는 나'로서 살고자 한다.

얼마나 멍청한지, 그는 자신이 모든 상금을 다 차지하기 바로 직전, 게임을 중단하고, '생명'을 살리기를 선택한다. (물론 그의 선택은 끝까지 기존 판의 룰을 따르고자 한 상우에 의해 뒤집히게 되지만...)


기훈은 삶의 기반을 진정성, 생동성, 경험의 질에 둔다.
소유에 두지 않는다.

소유와 존재를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자신의 타당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내가 소유한 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기훈은 '소유' 보다는 '생명'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사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기훈이 한 선택들이 모여 기훈의 정체성을 만든다.

그가 소유한 것이 곧 그의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그의 정체성은 그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오징어 게임> 마지막 판에서 맞대결을 하게 되는 기훈과 상우.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판의 룰을 철저히 따른 '똑똑한' 상우가 아니라,

판의 룰을 깨고자 했던 '멍청한' 기훈이 승리해서, 안심이 된다.


모두가 쉽게 장기 판 위의 말처럼, 도구가 되어 살아가기 쉬운 세상에서,

스스로 도구화가 되기를 거부하고, 존재로서 살아가는 자가 이길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

내가 소유한 것이 곧 내가 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


기존 판의 룰을 잘 지키는 똑똑함이 아니라, 기존 판의 룰을 깰 수 있는 멍청함이, 계산하지 않는 그 멍청함이 '진짜로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그런 세상에 대한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훈이 가지고 있, 오징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했던 진짜 능력이, 지금 우리에겐 꼭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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