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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 상상력 VS. 적 발명하기

하루에도 수십 번 뉴스를 검색한다. 불안해서이기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도 해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기가 찬 뉴스가 있는가 하면 희망을 품게 하는 기가 막힌 뉴스도 있다. 이런 시국에 이런 짓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싶은 뉴스가 처음엔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가 만든 세상이 여전히 살맛 나는 곳이구나 싶은 좋은 뉴스가 더 많아졌다. 나쁜 뉴스 홍수 속에 좋은 뉴스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좋은 뉴스가 나쁜 뉴스를 몰아내는 모양새라 마음이 좀 놓인다.     


우리나라 사람들 취미생활이 국난극복이라는 이야기, 들으면 들을수록 확신이 생긴다. 국난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위기에서도 우리는 분열하지 않고 똘똘 뭉쳐 이겨내는 데 소질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불안과 불만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침착하게, 어려움을 물리치는 걸 보면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게 확실하다. 취미생활이라기에는 어딘가 좀 민망한 면도 있지만, 어떤 나라들보다 잘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차 탄 채 검사하는 방법을 전 세계가 따라 한다는 소식 들으니 괜히 우쭐해진다.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다. 선별진료소에서 길게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산뜻하게 날려버린, 기가 막힌 생각이다. 시대를 이겨낸 좋은 사례로, 두고두고 칭찬해도 아깝지 않을 일이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는 고통을 함께 이겨내고자 자신이 가진 생각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모범적인 예다. 이제는 공중전화 박스를 이어붙인 것처럼 생긴 터널을 걸어 지나가면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세계 최초로 시행한단다. 국난극복이 취미생활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토록 창의적일 수 있을까.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코로나맵 또한 감동적인 상상력이다. 누가 시키지도, 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만들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안심시킨 착한 앱이다. 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개발자를 보니 마음씨가 참 고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참 선한 모습이었다. 곳곳에 이렇게 스스로 나서 국난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얼마나 든든한가. 우호적 상상력의 무한 연결이다.      


사실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도 있다. 신문에는 아주 작은 기사로 실렸지만 며칠째 계속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라고 마스크를 마을 이장에게 보급했는데, 이장은 마스크를 주민들이 아닌 지인들에게 나눠줬단다. 어이가 없는 것은 이 악행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장으로부터 마스크를 건네받은 이장 지인의 딸이 그 마스크를 인터넷을 통해 팔았단다. 또 다른 악행으로 이어졌다. 기가 찬다 기가 차. 말이 안 나온다. 국난을 이용해 제 잇속만 챙기려 했다니 어이가 없다.      


일본 정부가 하는 대응들을 보고 있으면 이웃이라는 말 접고 싶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조선인 유치원에만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아가 났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일본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서 그랬단다. 지도를 할 수 없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그랬단다. 유치원 관계자가 우려하는 문제가 혹시 마스크를 되파는 것 같은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마스크를 받은 뒤 되팔까 봐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참 못됐다 싶다. 욕지거리가 솟구쳤다. 약하고 어린, 아이들을 두고 저들이 생각한 게 도대체 무엇인지 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차별과 혐오, 배제의 상상력이 작동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오늘의 일만이 아니라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계속 그러고 있는 것 같아 불쾌했다. 오죽하면 사연을 들은 일본 시민들이 마스크와 다른 물품에 미안한 마음을 적은 편지까지 학교 정문 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이 소식까지 들으니 마음이 좀 풀리긴 했지만, 일본 사이타마현의 조처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치졸한 짓이다.      


사실 사이타마현은 ‘적 발명하기’ 기술로 자신들의 위기를 넘긴 역사를 가진 도시다. 이곳은 1923년에 있었던 관동대학살이 벌어진 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일본은 당시 자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사회주의 운동과 한국과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으로 골머리가 아팠다. 1923년 9월 관동 지방의 대지진이 발생하자 유언비어를 퍼뜨려 반대 운동 세력들을 한 번에 탄압할 구실을 만들어냈다. 화재와 가옥 붕괴가 이어지자 그 원인을 조선인들의 폭동 때문이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많은 조선인이 일본 정부의 적 발명하기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수가 일본 공식 기록으로는 6,651명, 독일 자료에 따르는 2만3,058명에 이른다. 적 발명하기로 자신들의 위기를 조선인들에게 떠넘겼다. 몰염치하고 치졸했다. 100여 년 전에도 그런 바 있고 지금도 그 방법을 시도하는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궁지에 내몰리게 될 때 자신의 힘으로 그 위기를 돌파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원인과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이 최근 경제보복과 입국 제한 조처 등을 보면 미흡한 자국의 대응책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을 애꿎게 우리에게 떠넘겨 급한 불 먼저 꺼보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른바 적 발명하기 꼼수로 일본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술수를 부리는 것 같다.      


분노에 휩싸이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감정에 휘둘려 적을 발명하기 시작한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도 적을 발명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도발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때로는 분명한 사실도 왜곡하며 마구잡이로 비난만 일삼는 가짜뉴스들을 보면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오로지 적 발명하기에 급급한 것 같아 한심하다.     


우리는 지금 적대적 상상력에 휩싸이지 않고 우호적 상상력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적 발명하기 같은 쉬운 방법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차 탄 채 검사와 같은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천으로, 우호적인 상상력으로 이 위기를 분명히 극복할 수 있다. 잊지 말자 우리 국민은 취미생활이 국난극복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의 우호적 상상력이 가장 활짝 꽃을 피운 때가 바로 이때로 기억한다. 다시 보고 싶은 것은 4강 진출 신화가 아니다. 열린 마음으로 뜨겁게 연대한 국민의 열정이다. 경기마다 펼쳐진 카드섹션 문구는 또 얼마나 사람들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가. 그때 온 국민이 보여준 우호적 상상력이 다시 재현되길 바라고 있다. 누구 한 명의 상상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상상이 현실이 됐던 그런 날이 다시 오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힘들고 어렵지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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