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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푸라기 만들어 베풀기

코로나 기본소득은 지푸라기다

지푸라기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한, 제법 크기가 있는 것이려니 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니 손아귀에 쥘만한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사전에 찾아보니 ‘낱낱의 짚이나 부서진 짚의 부스러기’란다. 예문을 읽어보니 지푸라기가 얼마나 초라한 크기인지 알 수 있다. “새끼를 꼬고 있었던지 옷에 묻은 지푸라기를 떨어낸다.” 어이쿠, 물에 빠지면 잡는다는 지푸라기가 그 정도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에 담긴 긴박한 속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푸라기는 그야말로 잡아봐야 소용도 없는, 무용지물 딱 그 정도다. 그 초라한 존재감이라도 손아귀에 쥐어보려는 심정, 그 처절함과 달리 발 딛고 선 현실의 야박함이 딱 지푸라기 그 자체다. 


    

코로나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가 멈춰설 듯 출렁이고 있다. 세계 증시와 유가가 폭락하는 중이다. 이러다 전 세계가 감염병으로 인해 고장 나 멈춰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가능하다면 외출을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까지 더해지면서 일상생활도 매우 위축됐다. 산책도, 운동도, 공부도, 만남도, 개인 활동뿐 아니라 모여서 함께 하는 대부분의 일상이 줄거나 멈춰섰다. 일상이 멈추니 돈의 흐름도 멈춰섰다. 가계경제뿐 아니라 지역,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도 위태롭다 아우성이다. 바깥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누구도 장담을 쉽사리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답답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돈을 쓸 수 없으니, 돈을 벌 수가 없고,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니 다시 쓸 돈이 부족하다. 이런 악순환을 견디고 넘어가기가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다. 사정이 좀 넉넉한 사람들은 벌어둔 돈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버티면 된다. 하지만 모아둔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요즘 같은 경기는 그냥 죽으라는 거냐 싶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테다. 몸뚱어리를 지탱해줄 정도로 질기고 긴 풀이 아니어도 좋겠다 싶다.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참담함을 잠시나마 잊고 견디게 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사람이 넘쳐난다.     


사정 딱한 사람이 여기저기 한둘이 아니다. 나라가 긴급자금을 지원한다는데 체감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같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하면 좀 심한가. 시장기만 속이는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모르겠나. 정부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지푸라기라도 쥐었으면 하는 서민들에는 지푸라기 구경도 어려우니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소상공인 지원금 신청 상담 신청도 며칠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신청서 제출 후 지급 결정이 한 달이나 걸린단다. 신청자가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으려니 이해는 된다. 그런데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불안은 늘어만 간다. 대출받기 전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무너질까 봐 겁이 난다. 지푸라기가 저기에 있나 했는데, 이제 그거라도 잡나 했는데,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희망이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본다. 지푸라기가 하나둘 생기고 있다.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락을 보내는 시장 상인들도 있고, 돼지저금통을 그대로 보내는 아이들까지 선심과 선행은 줄을 잇는다. 자기가 가진, 할 수 있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기꺼이 내어주고 있다.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뿐 아니라 현장에서 땀 흘리는 분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눈물이 난다. 모두 자신이 가진 지푸라기를 내어주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자식이 원래 아홉이었다. 안타깝게도 아홉 가운데 여섯을 홍역 같은 돌림병 때문에 잃었다. 그때 양반도 상황이 이럴진대 민초들의 말 못 할 상황은 충분히 상상된다. 민초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돌림병에 왜 이리 대책이 부실한지 다산은 답답했다. 의원들을 찾아 왜 이렇게 돌림병에 속수무책인지 의원들에게 그 원인과 대책을 다산이 물었다. 돌아온 의원들의 답은 애석하게도 이런 것이었다. 돌림병은 십수 년에 한 번씩 생기고 이 지역을 빗겨 나면 상관도 없는데, 이문도 남지 않는 돌림병에 쓸 신경이 어딨냐는 것. 자주 있지도 않고 이문도 남지 않으니 그리 관심 둘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산은 곰곰이 따져 살피고 직접 나서 돌림병 처방전을 쓴다. 마과회통이라는 돌림병 백과사전은 이런 사연으로 만들어졌다. 의원은 아니었지만, 의학지식이 깊었던 다산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민초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정리하고 묶었다. 돌림병이 다시 창궐하면 이 처방전을 참고하여 의원들이 우왕좌왕하지 말고 침착하게 처방이라도 값싸게 베풀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산의 지푸라기 만들어 베풀기였다.      


전국에서 착한 임대료 이야기가 꽃을 피우려 한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당장 한 달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처지에서는 착한 임대료가 지푸라기다. 더 급한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착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참에 코로나 기본소득 이야기도 반갑다. 상황이 긴박한데 공산주의나 포퓰리즘이니 하는 정치적 해석에 매몰되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사회 전체가 논의해보면 어떨까 싶다. 이 또한 지푸라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한발 더 나아가 신용카드값도 야박하게 매달 걷지 말고 두 달 정도 통 크게 미뤄주면 좋겠다는 무모한 상상도 해본다. 어떻게 안 될까?     


우린 모두 연결돼 있다. 이쪽이 큰돈을 벌면, 다른 쪽은 분명 어려워진 것이다. 세상은 돈을 버는 쪽만 있을 수 없다. 어느 한쪽만 이윤을 쌓으면 결국 그쪽도 더 자신의 물건을 살 사람이 없어지기에 베풀 수밖에 없어진다. 한 치 앞도 못 보고 자기 배만 채울 수 없는 게 세상 이치다. 지금까지 세상은 이렇게 진화해왔다. 세상 곳곳에 지푸라기가 흩뿌려져 있지 않으면 도미노 게임처럼 서서히 모두가 넘어지게 된다. 제 혼자 뿌리 깊게 묻어 뒀다고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우린 모두 연결돼 있기에 내가 살고자 한다면 지푸라기 싸리비로 깡그리 쓸어버리자는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 퍼주기다, 아니다, 이런 낡은 틀로 새로운 가능성을 짓밟지 말았으면 한다. 걱정과 우려를 줄일 방법은 얼마든지 더 상상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인 사람들에게 매몰찬 매질은 적어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슬기롭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좋겠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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