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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만 봐선 안 된다

생각 격리에서 벗어나보자

경험하지 못한 위기와 혼란을 겪으며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신도 넉넉하지 않으면서도 남을 위해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분들이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진짜 심성이 곱구나 싶다. 역시 성선설이지 생각한다. 반대로 온갖 나쁜 방법을 동원해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성악설이 맞나 싶기도 하다. 희망을 발견하다가도 악이 여전히 똬리를 튼 세상이구나 싶어 마음이 어지럽다.      


전 세계에서 위기와 혼란에 대한 온갖 정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친다. 세상사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볼 수도 없이 쏟아진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기도 어렵다. 정보 소용돌이에 잘못 휩싸이게 되면 핵심도 놓쳐버리고 생각은 뒤죽박죽으로 꼬여버린다. 진짜 무엇이 맞는지 올바른 판단은커녕 자기 생각은 무엇인지 갈피도 못 잡게 된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책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한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며 치켜세운다. 다른 쪽에서는 세계는 칭찬보다 우려를 더 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칭찬도 우려도 모두 있을 것이다. 두 쪽 입장 모두 옳다는 입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둘 다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둘 다 옳은 면도 있고 틀린 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읽는 사람이 가려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앞을 못 보는 생쥐들이 코끼리를 만지고 돌아와 제각각 다르게 하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코끼리를 본 적도 없는 생쥐들이 코끼리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생쥐들이 자기가 경험한 것으로 코끼리를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 뱀이라 말하는 생쥐도 있고, 어떤 쥐는 코뿔소라 하고, 도통 생쥐들 이야기로는 코끼리를 알 턱이 없다. 말했듯이 생쥐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코끼리를 경험하지 못했을 뿐. 생쥐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두 동원했겠지만, 자신들의 경험으로만 알려 했으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이 점이 생쥐가 저지른 잘못이다.      


아는 만큼 본다. 아는 게 있어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 수 있다. 많은 정보를 익히는 게 이래서 아주 중요하다. 함정도 있다. 수많은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 사실도 있고 거짓 정보로 채워진 뉴스도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관건은 역시 본인의 판단력이다. 아는 게 있어야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아는 만큼만 보면 안 된다. 아는 것 밖의 것도 보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아는 것만 봐서는 낯설고 새로운 정보를 미처 보지 못하기도 한다. 아는 것만 보다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다른 입장에서 주장하는 객관적 사실조차 놓쳐버리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책을 둘러싼 상반된 주장에는 이런 오류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전하려는 태도 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 생각을 전하기에 급급한 게 요즘 언론의 모습이 아닌가 묻고 싶다.      


넘쳐나는 정보 홍수 속에서 급하게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다르게 그리고 두껍게’ 사실을 음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확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생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아는 것으로 생각이 그쳐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야 모르는 것도 알 수 있다.      


헬렌 켈러는 “세상은 고통으로도 가득 차 있지만, 그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둘 모두를 봐야 한다. 무엇을 볼 것인지 그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고통도, 극복하려는 일도 동시에 읽어야 한다. 잘하는 것과 잘못 하는 것을 함께 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잘하는 것도 있고 잘못 하는 것도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는 무작정 믿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될 때까지 자신을 믿고 생각을 계속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지금 이 상황이 기회인지, 위기인지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작정 잘될 거야 너스레 뜨는 게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긍정과 부정적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서 지금 무엇을 더 적극적으로 살피고 해결해야 하는지, 그렇게 되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적극적 사고가 바로 긍정적 사고다.      


뉴스를 읽을 때는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기준은 하루아침에 가져지는 게 아니기에 훈련을 해야 한다. 자가격리라는 초유의 사태를 접하면서 불안과 고통을 확산시키기에 앞장서는 게 언론이 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몸이 갇히면 생각도 갇힌다. 생각을 격리시켜서는 안 된다. 언론은 불안 조장을 거두고, 시민들은 생각 격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지금 이 상을 좀 더 ‘다르게 그리고 두껍게’ 읽어보자. 우리 모두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긍정적 사고를 이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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