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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극복하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립이 아니라 기회로 반전시키기

교통카드 대금청구 메일을 확인하고 실감했다. 이용금액이 평소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예상은 했지만, 청구서를 보니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예정된 강의와 일들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어 집을 나갈 일이 줄었다. 아예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새로운 일을 도모할 미팅도 온라인 화상회의로 바꾸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할 일이 없어졌다.     

 

일상생활 상당수가 집 안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먼저 외식이 끊겼고 음식 배달주문도 줄었다. 가끔 있던 지인들과의 술자리도 가능하다면 만남을 자제하는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가운데 하나다. 온 국민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우리 집이 졸지에 공부방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와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한다. 밥까지 먹다 보니 온종일 집안이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요즘 같은 비자발적 집안 생활에 익숙할 리 없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좀이 쑤신 모양새다.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자유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길어도 너무 길어 임시방편으로는 버틸 재간이 없어진 것. 방학도 아닌 미뤄지고 있는 개학이 난처한 건 아이들보다 부모가 좀 더 심한 듯하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도맡아주던 학습을 직접 다 챙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시간은 있는데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남는 시간’에 대한 불안증이 생기려 한다.      


최근 외부 활동을 자제하면서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자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검색과 유튜브 방송이 늘어나고 있다. 기발하고 희한한 묘안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단다. 홈 인테리어가 한창 인기였는데, 이제는 홈 플레잉 시대가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악 기호 가운데 아주 독특한 주문이 있다. 빠르게, 느리게, 강하게 같은 연주방법에 대한 기호인데 ‘고독하지만 자유롭게’라는 것이 있다. 사실 이 기호를 알게 된 뒤로 자주 이 주문을 내 삶에 대비시켜보고 있지만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경지가 느껴진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연주하라니 도대체 그 경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삶을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살라고 하면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인지 도통 가늠이 잘 안 된다.      


바쁘게 살아가는 게 어디 어른들만의 이야기이겠나. 요즘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고들 하지 않나. 누구나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갈 때는 틈만 나면 쉬고 싶고 놀고 싶기 마련이다.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여유 시간이 생기면 정작 단단히 벼르던 걸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잠을 자거나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노는 것도 계획이 있어야 하고 체력과 재력도 필요하기 때문인가. 사실 그것보다는 우리의 일상이, 현실이 문제의 원인이다. 계획도, 체력도, 돈도, 일상에서 유지하고 두텁게 하며 살아가기 빠듯하기 때문이다. 정작 시간이 나면 하려던 것은 마냥 꿈같은 일로 끝나기 일쑤다. 시체놀이 정도 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이런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이 자유롭지만, 고독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반대로 고독하지만 자유롭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창의적 생각은 ‘생산적 권태’ 상태에서 발현된다고 했다. 그의 말은 권태마저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권태 그 자체가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근면이 모든 것의 원천이라고 믿는 경향이 커졌다. 당연히 근면해야 한다. 그러나 근면만으로 부족한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 부분이다. 러셀은 그런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게 무료한 상태가 필요하다 주장한다. 이것저것 바다를 헤엄치듯 생각이 흘러 다니게 내버려 둬야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쉬어야, 놀아야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창의적으로 된다는 것. 고독을 느끼면서도 불안해하거나 무료함을 지겨워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자유를 만끽할 줄 알 때, 그 권태는 비로소 생산적으로 바뀐다.      


지금 우리는 비자발적으로 일상 대부분이 멈춰버렸지만, 이 시간을 그냥 보낼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잔뜩 계획을 세워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지금 집안에 갇혀 조금은 고독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그동안 지나쳐버린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의 모습에 대해, 그 민낯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자유롭게, 온갖 이데올로기와 정쟁으로부터 자유롭게 우리 삶의 결을 되짚어봐야 할 때이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 사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아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누구와도 언제든 만나고 이야기하고 어디서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으나 사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내 생각과 자립적인 삶의 기반은 그리 세우지 못했던 고독한 삶을 살아왔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고립에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의 비자발적 고립을 계기로 우리는 모두 고립이 고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을 전환하면 어떨까. 자유롭지만 고독했던 삶에서,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보자. 이 긴 시간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는 더 없는 기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방역현장의 모든 의료진과 공무원 여러분 너무 고맙습니다. 


- 가능성연구소 대표 서종우(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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