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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Aug 25. 2016

우리의 영어공부는 그렇게나 잘못된 것일까?

한국영어교육에 바치는 소고


내가 16년간 영어공부를 했는데 한 마디를 못해요 내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 여 기업에 지원서를 넣은 후에야 취업한 신입사원 A가 있다. A의 스펙은 꽤 훌륭하다. 이름은 꽤나 들어봤음직한 대학교의 공대를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했고, 외국에 나가 어학연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영어가 약점이 되지 않도록 토익학원을 다녀 900 점대의 성적을 받았다. 면접에서도 다소 과장이 섞였을 지라도 영어에는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대답했다(어쩌면 면접은 과장된 자신감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영어를 공부했고, 시험 점수로 증명했으니 자신의 영어는 꽤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영어로 대화? 침묵해야 하는 우리들


A는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던 날 배치될 부서에 대해 통보받았다. 기술영업부, 그것도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한.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의 공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수 B 대리와 함께 미팅에 나갔다. 현장에서 오가는 빠른 대화, 익숙지 않은 용어와 신호에 A의 자신감은 금세 사라졌다. 토익점수가 고작 700점대라던 B대리는 능숙하게 그들과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다. 나의 16년 영어 공부는 어디로 갔는가. 처음 만나는 영어 대화의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16년 공부 기간이 주는 허상


위의 이야기는 자의적으로 꾸며낸 한 신입사원이 맞닥뜨릴 수 있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겠지만,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항상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A만큼의 자신감이 없을 순 있지만 A처럼 16년간 영어를 공부했고, 학창 시절에는 과외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토익학원을 다녔다. 영어공부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가진 영어실력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자신이 없을 것이다. 16년의 공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16년 동안 영어를 공부한 것일까. 문자 그대로 영어 공부를 16년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영어를 16년 동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우리의 영어공부는 어디를 향해 있었는가


16년 동안 공부했지만 16년 동안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일견 모순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틀린 부분이 없다. 앞에도 맞고 뒤에도 맞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풀어서 말하면 우리는 EFL 환경에서 16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해왔지만, ESL 같은 상황에서 16년간 영어를 써 온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어를 공부해왔지 써 온 적이 없다. 그러니 실제 대화 상황에 들어가면 당황하고 실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시험에는 단련되었으되 대화를 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천재라도 처음 하는 일을 능숙하게 잘할 수는 없다. 



EFL과 ESL


그럼 앞에서 말한 EFL과 ESL이란 무엇인가. EFL은 English as Foreign Language의 준말이고, ESL은 English as Second Language의 준말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EFL은 한국, 일본, 중국 등과 같이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고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은 없는 경우를 지칭하고, ESL은 영어 사용권 국가로 이민 간 사람들처럼 영어를 배워서 실생활에서 쓸 수밖에 없는 경우를 가리킨다. 즉, EFL은 영어를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고 ESL은 실제 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줄임말의 한 글자 차이지만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실생활에서 반드시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많은 시간 영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 EFL와 ESL은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이 속한 영역은 세 번째 영역, 영어는 외국어일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공부한 환경은 EFL인데  사회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은 ESL 수준의 영어실력이라는 것이다. 책 혹은 mp3, 동영상으로 영어를 공부했고 기껏해야 받아쓰기나 따라하기(shadowing) 정도 해왔을 뿐인데, 실생활에서 능숙하게 영어 쓰기를 원하고, 그러한 영어를 하지 못하면 받아온 시험 점수를 까내리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진 영어실력을 평가절하하고 공부하는 데 쓴 시간과 돈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반성하게 만든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우리는 EFL 환경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공부해왔던 것뿐이다. 전과목을 잘 해야만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기에 영어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작을 수밖에 없고, 할당된 시간에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서 우리는 단어장을 만들어 외우고, 리스닝 스크립트를 외웠고, 독해의 스킬을 배웠다. 영어공부조차도 경제적 원리 '최소 투자, 최대 이윤'에 의거해 이뤄졌고, 우리의 영어실력은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문법 번역 방법론(Grammar Translation Method)


GTM에서 강조하는 것들은 우리가 배운 것들이다

우리의 영어공부를 구성한 공부방법은 무엇이었는가. 문법 규칙에 대해 공부하고, 규칙에 어긋난 문장은 무엇인지 찾아내는 훈련을 했다. 동시에 장문의 독해 지문을 받고 그 안에 모르는 단어를 찾아 별도로 정리하고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키웠다. 문법과 독해. 이 두 가지 공부법이 우리의 영어공부법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언어교육방법을 문법 번역 방법론이라고 한다. 시중에 많은 영어 관련 서적들이 깎아내리기 바쁜 이 공부법은 사실 가장 오래된 언어 공부법이며, 가장 효율적인 공부방법이다.


문법 번역 방법론의 전통은 유럽의 고전 라틴어 공부로부터 시작된다. 고대 로마 시기 집필된 성경, 많은 수의 희곡, 철학서, 역사서 등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전 라틴어의 문법을 배우고 그 단어들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내용들을 번역해서 이해해야만 했다. 유럽인들이 모국어로 사용하던 언어들은 라틴어에 밀려 2등 시민과 같은 처지에 불과했기에 정확한 고전 라틴어를 이해하고 구사(작문)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던 외국어 실력이었다. 문제는 고전 라틴어가 죽은 언어라는 것이다. 세속 라틴어와는 달리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기에 고전 라틴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고, 교육은 당연히 문법을 익히고 독해를 하는데 집중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고 현대의 한국에 이르게 되었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기에 실생활에서 사용할 일이 거의 없지만 학교 과목으로써 혹은 시험과목으로써 영어 실력이 필요했던 과거 문법 번역 방법론이 선택되어 학교 현장에서 적용된 것은 아주 당연했다. 한국인들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영어를 가르치는 데에는 EFL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입시과목에서 영어는 빠지지 않는데, 단시간에 영어실력을 키워야 하니 문법 번역 방법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아직까지 방향성이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 기업 혹은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ESL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주어진 지문을 잘 읽고 해석해서 문제를 맞히면 끝났지만, 이제는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능력이 추가되었다. 업무적으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취직, 승진 등을 목적으로 토익 점수를 요구했고 토익스피킹도 필수가 되었다. 사회적 요구는 변했지만 학교교육법은 그대로니 당연히 우리들의 영어실력은 사회의 요구와 모습이 다르고 부족한 능력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숙제가 되었다. 이 숙제를 아직 제대로 못 마친 우리는 스스로 가진 영어 토대를 부정하는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하는데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법이 효율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는 점이다. 앞서 예를 든 신입사원 A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면, 외국인과 5분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전 세계 영어학습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단어 수준을 가진 그룹에 속하고 영자신문의 내용을 100%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이만한 토대를 가졌다면 그동안의 영어공부를 헛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영어공부: 토대 활용하기


A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어 말하기에 대해서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훌륭한 토대를 이미 가지고 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수능 영어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고 취직하기 위해서 토익 900점을 넘겼다. 독해를 하는 데 있어서는 특수용어만 안다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며, 표준적인 발음에 한정되지만 영어뉴스를 듣고 알아듣는다. 이러면 다른 장르의 영어공부를 이제 시작하면 된다.

투자를 한 바구니에 담아서 하지 않듯 영어공부도 여러 장르에 골고루 투자해야 한다

말하기를 훈련하기 위해서 1대 1 영어회화 수업을 듣거나 미드의 대본을 연습하면 그만이고, 원어민의 다양한 억양을 익히기 위해서는 듣기 연습을 하는 많은 유튜브 동영상을 활용하면 된다. 16년의 공부는 헛된 것이 아니었기에 A가 원하는 영어 말하기 실력을 갖추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되 그 공부 대상이 바뀔 뿐이다. 다른 영어 장르, 다른 영어 발음/억양.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어공부가 실제로 필요한지 점검을 해보는 것이다. A는 외국인을 상대하는 기술영업직을 직업으로 하고 있고 외국인 바이어와의 미팅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 노출되었다. 영어 말하기 실력이 곧 생존인 환경인만큼 A는 살아남기 위해 영어 말하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도 그러한가? 영어 말하기 실력이 금방 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놓였는가? 아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의 영어 사용 환경은 아무리 세계화가 되었다 하더라도 EFL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필요 점검하기


자신이 가진 영어실력, 달성해야 할 목표를 위해 SWOT 분석은 반드시 필요하다

혹자는 영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영어는 세계 제 1의 공용어 위치를 점하고 있고 이는 강화될지언정 약화되진 않을 것이다. 또 수많은 고급 정보들이 영어로 된 텍스트 형태로 유통되고 있으며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한 이를 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이다. 영어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못 살 세상은 아니지만 영어를 잘 한다면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내게 필요한 영어는 꼭 스피킹 위주의 영어가 아닐 가능성이 꽤 높다. 오히려 지금까지 영어 독해를 위주로 공부해왔던 것처럼 인터넷이나 원서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우리에게 절실한 제 1 능력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은 부족한 스피킹 공부가 아니라 더 정확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내가 찾은 텍스트가 정확히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강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 책을 읽듯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것은 미드 대본을 암기하면서 다닐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리스닝을 하고 더 확실한 리딩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반드시 하는 것이 SWOT 분석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외부의 기회와 위기요인을 분석해야 프로젝트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방법은 영어공부에도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영어실력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영어를 활용하는 환경의 기회와 위기요인은 무엇인가. 이것을 제대로 파악해야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공부,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하는 영어공부를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좀 더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영어는 무엇인가. 그 장르는 무엇이며 그것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자신의 필요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영어의 토대는 생각보다 괜찮다. 다만 어느 한 방향에 치중된 그 토대를 고르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영어실력과 공부에 대해 SWOT 분석을 해보는 것, 그것이 골고루 먹는 영어 공부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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