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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Mar 31. 2024

오로라 공주


 아이들을 잠자코 보고 있으면 세상만사가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방긋방긋 웃든. 우렁차게 울든. 평온하게 잠을 자든. 작고 여린 생명체를 지켜보다 보면 삶이란 게 참 단순하고 쉽고 명쾌해 보인다. 졸리면 자고. 좋으면 웃고. 배고프거나 짜증 나면 울고. 밥 먹으면 싸고. 싸면 먹고. 그래서 왠지 모르게 묘한 위로를 받는다. 산다는 게 이렇게 단순한 건데.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나는 뭐가 그렇게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가. 도대체 뭘 걱정하고 뭐 때문에 괴로워 하나. 사서 스트레스받지 말자. 심플하게 살자. 세상만사 다 부질없다. 뭐 이런 마음......?      


 A군의 딸을 처음 신생아실에서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경건해졌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예수님이나 부처님 앞에 서 있는 하찮은 미물 같은 기분. 오로라나 사막같이 대자연을 마주해 본 사람들이 비슷한 위로를 받는다고들 하던데.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를 한참이나 지켜보며, 나 역시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하고 선 기분이 들었다.      


 엊그제도 A군의 딸내미를 보러 탄현에 다녀왔다. 촬영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 탓인지, 한 번만 놀러 오라며 여간 징징대는 탓에 퇴근 후 그의 집에 방문했다. 문을 열자 A군의 딸내미가 우렁찬 울음소리로 나를 반겼다. 그가 처음 신혼집을 장만했을 때는 그 집이 대궐처럼 넓다고 생각했는데. 육아용품으로 집안이 가득 차니 눈에 띌 정도로 비좁게 느껴졌다. 집안이 아이 위주로 재편됐음을 공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그새 많이 커서 무게가 제법 나가 보였다. 너무 귀여워서 아빠 대신 잠깐 안아봤는데 귀신같이 알아채고 울음을 터뜨렸다.     

 꺼이꺼이 우렁차게 울어대는 A군의 딸내미를 어화둥둥 달래면서. 그렇게 울다 지쳐 새근새근 잠들어버린 아이를 보면서. 내가 당면한 과제들이 다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오만 걱정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한 주를 보내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무슨 의미가 있나. 다 부질없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순리대로 받아들이자.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뭉클하면서 위안이 됐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를 보러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별 거 없다는, 그 심플함이 큰 위로가 됐달까. A군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참 힐링되는 시간이었다고. 피곤해도 만나길 잘했다고. 평생 그놈한테 그렇게 길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뭔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너 가고 두 시간을 더 울었다.

 A군의 회신 역시 아이의 세계처럼 심플했다. 역시 대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의 답장을 받고 나는 웃으며 조용히 소망했다. 그녀의 딸이 그저 내일도 오늘처럼 심플하게 지낼 수 있기를. 가능한 오래도록 오로라 같은 존재로 머물 수 있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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