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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May 12. 2024

외동아들로 살아남기Ⅱ

 나라에서 지정한 가족 행사가 많은 한 주였다. 남들이 다 하는 건 안 하고 못 배기는 우리 엄마는 춘천집에 내려오지 않는 나에게 섭섭함을 토로해 댔다. 않이 아니라 못이라고 정정해 줘도 수화기 속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전라도도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닳을 거린데 왜 시간이 없냐. 네가 하도 안 내려와서 옆집 사람들이 우리 집은 자식이 없는 줄 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이 우선이다. 이런 날에는 직접 못 내려와도 꽃이라도 한 바구니 보내야 하는 건데 내가 널 잘못 가르쳤다 등등. 


 나는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춘천의 지리적 특성이 원망스럽다. 애매하게 서울과 가까운 거리. 강원도인 주제에 지하철로 연결된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그 정도면 가깝다고 생각하는 거리. 하지만 직접 가자고 맘먹으면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먼데 밖에서 보기엔 가깝게 느껴지는, 그런 거리. 춘천과 서울의 거리가 엄마와 나 사이 마음의 거리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정말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물리적 시간도 그렇지만 마음의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꽉 차 있는 상태기도 했다. 꽉 찬 쓰레기통을 비워낼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평소처럼 수화기 속 잔소리들을 넉살 좋게 요리조리 회피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폭발 직전의 멘탈일 때. 저런 류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옆집 자식 같은 동생을 하나 더 나으시지 그랬냐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럴 때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굴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엄마를 가장 쉽게 상처 줄 수 있는 말들이 누가 옆에서 읊어준 듯 줄줄줄 떠오른다.      


 “언제부터 내가 어버이날을 챙겼어. 매주 집에 온다는 남의 집 자식도 나처럼 다달이 용돈 꼬박꼬박 가져다 바친대? 남의 집 자식 얘기 좀 하지 마. 나도 남의 엄마 얘기 안 하잖아. 그놈의 남들은 남들은.”     


 전화를 끊고 회의에 들어가니, 대본 상황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네 쌍둥이의 엄마가 이때 어떤 감정일지 어떨지 블라블라. 로맨스가 블라블라. 허공에 흩뿌려지는 오디오를 흘려들으며,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대본 속 네 쌍둥이 엄마가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 속 외동아들의 엄마는 지금 외롭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딸을 하나 더 낳을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외동은 이기적으로 자란다는 말. 

 그 말을 늘 부정하고 살아왔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외동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가족보다는 내가 우선이고 나보다는 친구가 친구보다는 일이 우선인 삶을 살아왔으니까. 타인에겐 친절하면서 가족들에게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그 간극이 엄마를 늘 외롭게 한다. 그 외로움을 달래는 법은 너무 쉽다. 차를 타고 두 시간만 달려 춘천에서 저녁 한 끼 먹고 오면 된다. 그러면 엄마는 이모들에게 내가 올해는 용돈을 얼마나 줬는지. 얼마나 비싼 밥을 사줬는지 며칠은 자랑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두 시간을 외면해버리고 만다. 이기적이게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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