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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지방이 May 19. 2024

마스크 맨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을 숨기는 일에 능숙해진다. 자기 관리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표정관리 하나만큼은 이제 꽤 한달까. 카톡 자동 완성기능을 얼굴로 구현하는 느낌이다. 상황에 맞는 표정을 등록해 놓고 살아간다. 늘 매뉴얼화된 감정을 내놓으며 살아가다 보니 문득 서글퍼졌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던데. 사회적인 식물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주인님이 간간이 주는 물이나 받아먹다 언젠가 말라죽을 테지. 그래도 어쩌겠나. 월급. 놓치지 않을꼬예요…


 그래서인가. 마스크를 쓰는 게 디폴트였던 때가 좀 그립다. 표정관리에 드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망하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거나, 내로남불이라고 느끼거나, 얄밉다거나, 이기적이라고 느끼는 등등. 원망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에 스며드는 빈도가 잦다. 그 마음들이 얼굴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그냥 일만 해도 쪽 잠 정도로 바쁜데 별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근래 들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럴 때는 자동 완성된 표정이 아니라, 날 것의 표정들이 막 튀어나온다. 이런 표정이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라 그냥 동물이 될 테다. 사회적 식물로 살아갈지언정 그런 대참사는 막아야 하지 않겠나. 그럴 때 마스크가 든든한 방패가 됐었는데. 말발굽 자석처럼 아래로 쳐진 입꼬리를 가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 마스크를 차고 다녔었는데. 감기를 핑계로 마스크라도 써야 할 판이다. 월급. 놓치지 않을꼬예요.......

 내가 팬데믹 시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만큼 내 자아가 지금 간절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원한다는 반증이겠지.

 마음속 질병관리청장세포가 사회적 거리두기 100단계를 선포한 게 틀림없다. 물리적인 거리도 두고 싶고 마음의 거리도 두고 싶다.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거리를 두기는 글렀고. 어찌하면 마음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코로나 시기에 죽자 사자 쓰고 다녔던 마스크가 생각났다.

 물리적 거리든, 마음의 거리든.

 나의 정신건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과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표정관리 할 기운조차 없어 팬데믹 시기를 그리워하다니 웃프다. 한여름 땡볕에 촬영장에서 마스크맨이라도 되어야 하나.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언제쯤 매뉴얼화된 감정 말고 날 것의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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