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인데 비가 꽤나 자주 온다. 이렇게나 비가 쏟아지는 5월이 있었던가. 올여름에는 태풍이 없는 대신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아주 긴 장마가 있을 거란 이야기다. 이럴 땐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나 보고 싶다. 투둑투둑 빗소리가 기분 좋게 들릴 때가 있었는데 올해는 영 아니다. 김연수 작가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같은 글을 읽으며 커피를 홀짝이고 싶건만. 애석하게도 그런 감성 따위 깡그리 사라졌다. 투둑투둑 빗소리가 올여름 촬영이 쉽지 않을 거라는 강력한 경고음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의 낭만은 개뿔. 아마 지금 MBTI검사를 하면 백 프로 T가 나올 것만 같다.
쏟아지는 빗소리만큼이나 계속해서 울려대는 건 카톡창 속의 공허한 외침들이다. 프로그램이 없을 땐 며칠이나 쥐 죽은 듯 고요하지만, 프로그램이 돌 때는 정말이지 3분 간격으로 카톡이 울린다. 이 빈도가 나를 신경쇠약에 걸리게 한다. 핸드폰 미리 보기에 뜬 프사만 봐도 표정이 굳어진다. 뭔데. 또 뭔데? 왜 연락 오는데?
카톡이나 메일 알람을 처리하는 두 부류가 있던데. 1이 몇백 개가 쌓여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과 1이 하나만 떠있어도 없애고 싶어 하는 사람.
나는 완전한 후자에 속한다. 메일이든 카톡이든. 읽고 씹을지언정 새 알람이 떠있는 꼴을 못 본다. 그래서 일을 할 땐 본의 아니게 핸드폰을 늘 쥐고 산다. 심지어 쥐고 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주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글쓰기 모임의 마감시간이 다가온다. 한 주 동안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많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쳐내면서 내가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사유할 틈이 없다. 예를 들면, 오늘은 일 때문에 <섬:1933~2019>라는 공연을 봐야 했다. 하지만 그 공연을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뭐가 좋았는지, 또 뭐가 싫었는지, 사유할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다. 그냥 이번주 스쳐 지나간 사건일 뿐. 굳이 적어두자면 초등학생 일기 정도의 느낌으로 기록할 수 있겠다. “오늘은 공연을 보았다.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참 피곤했다.” 끝.
읽었을 때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느낌이 드는 글을 참 싫어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그런 글을 싸지르고 있다. 내 기준엔 벌써 꽤 오래전부터 지속된 현상이다. 사람들도 알겠지만 내가 가장 잘 안다. 5만 원이 내기 싫어서 so what의 결론에 이르는 글을 계속 양산하고 있어 심히 괴롭다. 아마 올해 내내 이런 so what현상이 지속될 것 같다. 올여름 장마가 길어지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겨울 까지도. 시간 여유가 생기면 좀 나아질까? 아니. 시간 여유가 생기면 또 다른 이유로 괴로워질 테지.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쓰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