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호랑이 Jul 25. 2017

필요한 말



수요일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자본 창업에 대한 강연을 듣는 날이었다. 신입은 한껏 들떠 있었고,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강연장에 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창업을 도와주고, 적게 일할수록 수익은 더 늘어난다는 이론을 전파하는 강연을 듣는 것만으로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무엇보다 수요일은 미루고 미루던 퇴사의사를 밝히기로 굳게 다짐한 날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강 팀장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속으로 앓고만 있다가 책과 강연을 통해 알게된 버터플라이 인베스트먼트의 신태순 대표의 블로그에 접속해 댓글을 남겼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창업에 관련된 여러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풍요롭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직장생활이 저에게 가져다준 기회도 많았지만 제 시간과 노동의 90프로를 가져가고 있는것 같아 미련 없이 떠나려고 합니다. 오늘 팀장님께 말씀 드릴 생각이구요. 그런데 또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불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결국 모든 결정과 선택은 제 스스로 하는 것이지만, 혹시나 퇴사를 망설이는 저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입은 자신이 쓴 글을 대표가 보기나 할까, 보더라도 답장이나 해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장 버튼을 클릭했다. 당장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신입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당장 회사에서 나오십시오. 회사 나와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제가 100% 장담합니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블로그에 글을 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으로 다음과 같은 장문의 답문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태순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하신 것 같네요. 각자 다양한 사정이 있어서, 섣불리 회사를 그만두라고 이야기는 잘 안하는데요. 특히, 회사가 싫어서 그만둘려고 하는 건 반쪽 이유라고도 말씀드리구요. 그 이상의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그만두라도 말씀드립니다.

건강 때문에 휴식이 필요할 때, 도저히 이대로 사는게 답답해서 못 견디겠을 때, 회사 나와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땐 나와야죠. 나와서 최소 1년간은 나를 위해서 뭔가 제대로 도전하겠다고 독하게 다짐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회사에서 스스로 나오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주변에서도 계속 말릴 것이구요. 그만큼 그만둔다는 명분을 만드시는게 중요합니다. 그만두고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리수도 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도 회사 다닐때보다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고, 그에 맞는 사람과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타이밍이 온 것 같아요.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도전하면 반응할 것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발견하고 성장하는 게 훨씬 거대할 거예요.

자유롭게 살려면 어차피 한 번은 미쳤다는 소리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그만둔다면 더 의미있게 그 이후를 준비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출발 응원하겠습니다~! 와우 축하드립니다. 


카톡 내용을 읽는 순간 가슴이 뻥 뚫렸다. 신입은 장문의 글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당장 회사 그만두고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건 아니었다. 그냥 매일 아침 눈뜨면 출근하고 해가 지는 저녁까지 사무실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달이 월급만 받아가는 무능력한 직원이 될 것 같아 조바심 났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결국 퇴사한다는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조용히 퇴근했다.







1장. 적응기

자기소개

첫 출근

센스가 필요해

달콤한 행복

월요일

언니의 조언

닮고 싶은 그녀

정리의 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장. 권태기

심상치 않은 기류

낙동강 오리알

일 안한다고 소문 났어?

대표의 일침

도피

필요한 말


매거진의 이전글 도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