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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Jan 24. 2018

<원더 휠> 부조리한 삶과 욕망에 대하여

우디 알렌의 영화 <원더 휠> 리뷰


 <원더 휠>은 많은 점에서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다. 남자 주인공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내레이션으로 영화 속 상황에 거리를 두고 시작하는 도입부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껴지는 부조리극의 실존적 주제 의식도 그렇다. 영화의 주된 공간이 되는 지니 집에서의 인물 동선과 연출 구성도 연극적이고, 지니와 믹키, 그리고 캐롤라이나 관계에 대한 복선을 드러내는 소품도 <햄릿과 오이디푸스>, <유진 오닐 희곡집>같은 연극 책이다. 게다가, 영화 전체를 이끌고 가는 주인공인 지니의 불행한 상황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신경증적 반응은, 희곡이 원작인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여주인공 블랑쉬(비비안 리)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테네시 윌리암스'의 동명의 희곡을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51년에 영화화한 것으로, 사람들 내면에 감춰진 욕망에 의한 파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원더 휠> 유사하다. 그래서 두 영화 '전차'와 '원더 휠' 이라는 욕망의 속성을 상징하는 사물을 제목으로 드러내는 공통점도 갖게 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원더 휠>을 살펴보자.


1. 그들의 욕망

 영화 <원더 휠>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상적인 욕망을 꿈꾸고 있다. 촉망받던 연극배우였지만, 지금은 유원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지니(케이트 윈슬렛). 자신은 웨이트리스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현실을 부정하며, 나이 많고 낚시 좋아하는 알코올 중독자 남편 험티 대신, 연극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연하의 극작가 지망생 믹키와 내연관계를 발전시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한다. 또, 극작가 지망생이지만, 해변 인명 구조원을 하고 있는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자신이 봤던 가장 아름다운 해변 보라보라와, 극작가 삶에 어울리는 특별한 사랑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한 때 연극배우였던 불행한 유부녀와 쉽게 사랑에 빠지고, 갱단에게 쫓기는 위험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또, 지니의 남편이자 유원지 회전목마 관리자인 험티(제임스 벨루시)는 의절했던 딸이 찾아오자, 예쁘고 똑똑한 딸에 대한 과시적 욕망이 다시 자라나고, 험티의 딸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는 갱 두목과 결혼했다가 도망친 과거처럼, 또다시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꾸며, 의붓 엄마인 지미와 믹키의 복잡한 사랑에 끼어들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욕망을 상징하듯, 영화 속엔 종종 타오르는 불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문제를 일으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지니와 전남편 사이의 아들, 리치의 욕망을 표현하는  방화의 불길이다. - 영화 속 배경이 1950년대니, 당시에 십 대를 보냈으며, 영화에 빠져 지내면서 연극배우였던 엄마와 소통하고 사랑받고 싶어 불을 지르는 리치의 엉뚱한 캐릭터를 볼 때, 리치가 우디 알렌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그 욕망을 키워가며 삶에 희망을 꿈꾼다.


2. 대관람차 '원더 휠'

  유원지에 하나쯤 있는 놀이기구 대관람차! 천천히 움직이지만, 아찔한 높이로 상승하며 탁 트인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고, 다시 출발 원점인 바닥에 착지하면, 땅에 발을 딛고 내려와야 하는 놀이 기구! 감독이 대관람차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 데에는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는 의미와 함께, 아찔하게 상승했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는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욕망에 대한 희망으로, 대관람차가 서서히 상승하듯이 서서히 꿈에 부풀었다가, 대관람차가 하강하듯이 결국 희망이 사그라들어, 출발한 자리, 그 전과 달라지지 않은 지난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믹키와의 새로운 가정을 꿈꾸던 지니는 드레스를 꺼내 입고, 시뻘건 화장을 하고 믹키를 기다리지만, 캐롤라이나를 곤경에 빠뜨린 사실이 발각되어 믹키에게 버림받는다. 딸을 찾아 헤매다 으로 돌아온 험티는, 버림받아 넋 나간 지니에게 매달리듯 낚시 가겠냐고 고, "아, 유니폼 빨아야 해!"라는 말로  현실 복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니. 결국, 보라보라 해변에서 위험한 미녀와의 사랑을 꿈꾸던 믹키의 꿈도 사라지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던 캐롤라이나 또한 갱단 두목인 원래 남편에게 끌려갔으며, 딸을 위해 살던 험티도 언제 그랬냐는  딸을 잊고, 아내 니와 함께 하는 지지부진한 삶 속으로 돌아간다. 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꿈꾸며 상담치료를 받으려 노력했던 말썽쟁이 아들 리치조차, 상담치료에도 함께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또다시 불을 지르는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들의 강렬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시작과 달라진  하나 없는 불만족스러운 삶으로, 그들은 모두 돌아오고 만 것이다.



3. 삶에 대한 씁쓸한 시선.

80대 노장, 우디 알렌이 바라본 인생에 대한 시선은 매우 씁쓸하고 허무하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작은 꿈을 희망하며 벌였던 모든 일들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렇게 탈출하고 싶어하던 지겹고 힘든 일상다시 반복된다. 감독이 만든 영화 속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는 아무 소용 없으며, 고통스러운 삶과 소통 부재의 고독은 계속 이어질뿐이다. 마치 '부조리 연극' 속 세계처럼...


 <원더 휠>의 세계관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부조리 연극'은, 영화 속 배경과 같은, 1950년대에 유행했던 초현실주의 연극으로, 인간이 처한 상황은 부조리하며, 인간의 노력은 헛된 것이라, 그들의 실존은 변하지 않는다는 비관적 실존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순환의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부조리한 상황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쳇바퀴 돌듯 인생을 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런 주제적 측면에서 볼 때, <원더 휠>은 부조리 연극과 똑 닮아 있다. 자신의 외도로, 진정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첫 남편을 잃은 지니는 후회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또다시 믹키와 불륜에 빠지는 실수를 반복하고, 딸에 대한 꿈과 희망이 좌절되었던 험티는 돌아온 딸에게 다시 한번 인생을 걸어보지만, 또다시 좌절할 뿐이다. 전쟁처럼 스릴있는 삶을 즐기는 믹키는, 유부녀 지니와 불륜의 사랑을 하면서, 또다시 위험한 캐롤라이나에게 빠져들어 스스로 불안한 상황 만들어내고, 드라마틱한 사랑을 꿈꾸는 캐롤라이나 또한, 새로운 사랑으로 도피를 시도해 보지만, 원래의 위험한 현실로 또다시 끌려가고 만다. 부조리 연극의 주제처럼, <원더 휠> 속 등장인물의 욕망 패턴은 그대로 반복되고, 그들의 삶은 고통과 불안이 혼재한 부조리함 속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믹키가 지니에게 선물한 '유진 오닐'의 희곡처럼, 그들의 인생은, 삶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며 크고 작은 비극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영화를 만들어온 80대의 노장 감독은 <원더 휠>의 마지막 장면에 매우 의미심장한 이미지 하나를  던져 놓는다. 그 이미지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끌고 왔던 지니도, 믹키도 아닌, 감독의 자아라 할 수 있는 리치였다! 바닷가 백사장에, 잡동사니를 쌓아 놓고 불을 지른 리치. 영화는 그 불길을 리치가 차분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영화 속 주된 공간인 해변에서, 우디 알렌어린 시절 자아라고 할 수 있는 리치가, 불의 이미지로 영화를 마무리 한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 속 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결코 사그러지지 않을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불길일까? 아니면, 덧 없는 삶의 욕망들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깊은 무의식에서 발현한 정화의 불길일까? 감독 우디 알렌의 삶을 투영시켜 생각해 볼 때, 복합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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