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동인 시장과 감정 비용

왜 2차 동인 시장은 영리화되기 어려울까?

by 요비




업자 아니야?

현재 한국 동인계, 정확히는 2차 동인계에서 굉장히 높은 강도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다. '사업자'의 준말로, 이 맥락에서 정확한 뜻을 번역해 옮기자면; "행위의 동인이 원작품과 동인 문화에 대한 애정이 아닌 이익, 즉 금전인 사람을 뜻한다.


배경지식: 비영리 동인 행사의 운영과 수익 구조

('동인 행사의 종류와 운영 방식' 단락은 동인 문화권 특유의 관행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동인 행사의 종류와 운영 방식

'업자'는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이 발생할 만한 행사나 판매 기회 등을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동인계의 경우 이런 기회에는 다수의 동인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동인지 및 관련 굿즈를 사고파는 '판매전('배포전'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특정 장르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온리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는 '생카(생일 카페)' 등의 각종 컨셉 카페 이벤트와 극장 상영관 등을 대관해 주최하는 '응원 상영회'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행사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컨벤션 홀 등 큰 공간을 대여해서 벌이는 판매전의 경우에는 장소 대관료 등을 충당하기 위해 판매전에 부스를 내고 참여하는 '부스러'들에게 '부스비'라는 명목의 금액을 수납한다. 그리고 구매를 위하여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입장료를 받는다. 이렇게 참가비를 받고 이벤트를 주최하는 측에서 참가에 감사하는 뜻으로 전원에게 제공하는 굿즈를 '전프레'라고 하는데, 마치 결혼식 축의금의 답례품과 같은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좋다. 응원 상영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역시 기존의 영화 관람료보다는 조금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전프레를 제공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생일 카페 등 비공식 카페 이벤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여타 이벤트와 다른 점은 주최하는 장소가 대관된 카페이고, 음료 등의 판매를 주로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음료와 디저트류가 이벤트 내에서 판매되고, 이 경우 역시 통상 카페의 음료나 디저트 가격보다는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데, 이 가격이 카페 대관비로 충당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런 구매에 역시 '특전'이라는 명목으로 포토카드 등 작은 굿즈가 증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인 행사의 수익 구조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업자'가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추측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간단한 일이다. 대관료보다 더 많은 금액을 참가자들로부터 걷어들이고, 답례품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면 된다. '업자'가 아닌 진심으로 해당 장르(원작과 이를 둘러싼 동인 문화를 통칭함)를 사랑하는 동인이 이벤트를 주최하는 경우 이런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희박하다. 이익을 내기는커녕 행사 운영에 대한 미숙도나, 예기치 않은 변수 발생 시 부재하는 안전장치, 혹은 지나치게 순수하고 강도 높은 애정으로 인해 손실을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국에서 동인 문화를 접해본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적 시간을 쪼개어서 골치 아픈 행사 주최를 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러한 경우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개인적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행사를 주최한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비물질적이지만 값진 것이다. 가령 많은 동인의 감사하는 아름다운 마음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솜씨 좋은 연성러(동인 작품 창작자)와의 친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장르의 번영. 여기까지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이렇게만 모든 행사가 굴러간다면, 적어도 행사 주최에 관련해서는 동인계에는 문제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나 다 주최하려고 하겠네?

그러나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바쁜 현대사회이다. 아무리 비물질적인 가치가 풍족하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본업도 해야 하는 와중에 개인적 시간과 노력을 쪼개서 큰 이벤트를 주최하려고 하는 이가 선뜻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방금 언급한 것은 모든 문제 상황이 배제된, 그야말로 탁상 경제학 모델 같은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현실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서 주최는 난항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각종 감정적, 육체적 손실이 발생한다. 너무나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그중 하나만 예시로 들자면 동인 행사를 겨누고 들어가는 '신고'를 생각할 수 있겠다. 2차 창작 동인 행사의 경우에는 저작권, 혹은 성적 묘사의 수위 등을 문제 삼아 행사를 그르치게 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자주 나타난다. 이렇게 신고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대관처와의 계약이 틀어질 수도 있다. 계약 하나에만 문제가 생기면 다행이지만,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벌여야 하는 이 작은 운영 전체에 균열이 가서 자칫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 사정에 밝지 않은 외부자들의 비판, 나아가 비난은 자동으로 따라와 주최의 강력한 정신적 소모를 야기한다.

게다가 설령 이 모든 것을 감내할 각오가 있다 해도, 아무나 주최를 하는 건 쉽지 않다. 큰 행사처를 대관하거나 대량 굿즈를 제작할 할 때 운용할 기본적인 금전적 여유는 물론, 전프레에 쓰이는 굿즈 제작을 위해 창작자에게 컨택해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장르에 대한 이해와 인성 등이 요구된다. 여기에 더하여 장르 내 사람들로부터의 일정 정도의 신뢰 등등 많은 미덕이 수반되어야 한 사람의 주최 후보가 된다. 정리하자면, 이미 장르 팬덤 내에서 주최를 도맡을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인물이 한 줌인데, 이 소수의 인물 중 누군가가 자신의 사적 시간과 여유를 희생하면서까지 이벤트를 주최할 상당한 애정과 동기가 있어야 - 비로소 하나의 비영리성 동인 주도 이벤트가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업자의 재등장

여기에서 다시 업자가 등장할 여지가 생긴다. 업자의 시선은 간단하다. 진실된 애정 기반의 주최가 '비물질적 형태로 취하는 각종 보상'의 자리에 '금전적 이익'을 대체해 행사 전반을 바라본다. 행사에서 돈을 더 많이 받고, 덜 쓴다. 그렇게 발생한 이익을 자기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취하면 된다. 욕심을 더 내면, 혹은 욕심을 내지 않아도, 은밀한 방법으로 이익을 창출한 뒤 앞서 말한 각종 비물질적 보상(요약하자면, 많은 이들로부터의 애정과 존경과 감사...경우에 따라 특정 굿즈나 희소한 동인 물품)까지 추가로 챙길 수 있다. 이에 역사적으로 많은 업자들, 특히 진심 어린 동인을 가장한 업자가 이익을 노리고 동인 행사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사실 업자이기만 하면 다행이고, '사기꾼'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동인계의 경계심은 이런 식의 행태에 극도로 강해졌다. (물론 업자도 진정성을 위장하고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의 사기꾼이기는 하지만, 이 맥락에서의 사기꾼은, 대금을 수납하고 약속된 재화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업자와 차이가 있음을 알린다.) 이제 이쯤에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예 영리 사업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다. 어떻게 보면 (다시 한번) 간단한 일인 것이다. 드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든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하고 주최를 고용하는 것이 도대체 뭐가 나쁠까? 모두가 각자 밥벌이로 허덕이는 시대, 매일매일 등골 접히고 척추 빠지는 고통을 느끼며 자본주의의 수레바퀴 밑에서 신음한다. 적어도 덕질만큼은 이런 혐오스러운 노동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이 일에 결부되는 모든 고통스러운 일처리는 이 장르를 탈출구로 삼지 않는 다른 누군가의 밥벌이로 맡기면 되는 일이 아닌가? 마치 누군가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ㅈ뱅이를 치는 덕분에 내가 집에 누워서 배 긁으면서 재미난 애니를 무한제공받는 것처럼 말이다. 글쓴이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동인계에 글쓴이보다 해박한 지인들에게 해당 사항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동인 활동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글쓴이의 한정된 경험을 바탕으로 그저 생각해 본 것에 지나지 않는 단계에서 쓴 글이니, 이 점 감안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한국 동인시장이 영리화될 수 없는 이유

(해당 단락은 저보다 이 시장에 해박하신 가까운 오타쿠 지인의 의견을 참조하고 기초했음)

음험한 마음이 없는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윤 창출 가능성 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으며, 그중에 이 글에서 논의될 만한 사항(즉, 동인 시장화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요인들)으로는 1. 사업의 안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2. 수익 구조화의 문제가 있다.


사업의 안정성

첫 번째 사업의 안정성의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는 이 글에 이미 등장했다. 바로 외부로부터의 신고이다. 동인이 뭐 죄짓는 것도 아닌데 외부로부터 신고를 왜 하나요? 하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동인의 죄'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별도의 글을 통해 서술하도록 하겠다. 이 글의 취지에 맞는 선에서의 정보만 단순화해서 전달하자면, 다음과 같다. 동인 활동이 물론 죄는 아니며, 동인 창작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마추어 창작의 즐거움과 정서적 유대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장이다. 그러나 법률과 제도, 사회적 통념상 아직까지 죄랄까.. 어떤 잘못으로 여겨질 여지를 다수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저작권과 관련한 문제이고, 두 번째는 성인물 유통에 관한 문제이다.


2차 창작의 경우 원작과의 저작권 문제가 아직까지도 일명 '그레이존(grey zone)' 안에 남아있다. 법률상 원작자와 원작품에 대한 저작권 위법이나 도용으로 여겨질 수 있는 2차 창작물도, 관행상, 그리고 시장의 특성상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K-POP 아이돌 산업과 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융성한 오늘의 한국이니 아이돌 장르를 예로 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에스파 팬이 카리나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그녀의 퍼포먼스를 정성스럽게 담은 '직캠'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한다면,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발생한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것을 문제 삼아 해당 팬을 법정에 소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영상을 보고 소위 '입덕'을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에스파가 더 유명해지고, 더 큰 수익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이런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소속사 차원에서도 이를 '용인'하는 것이다. 2차 동인 창작의 원작이 되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 속칭 '투디(2D)'장르, 그리고 실사 영화나 뮤지컬 등 '쩜오디(2.5D)' 장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정성이 담긴 팬 창작물을 매개로 한 팬덤의 새로운 유입과 교류는, 팬덤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확신할 수 있는 고부가 가치 창출원이다. 그러나 언급했듯 이건 어디까지나 원작자의 '용인'의 영역이다. 분쟁이 생길 여지가 언제든 충분히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사실 저작권에 관해서 신고가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차 창작이 활발하고 고 이것이 팬덤 형성에 기여하는 문화 산업의 경우에는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이런 '그레이존'이 형성되어 왔고, 어느 정도는 안정되어 있다. 최근 한국 동인계에서 자주 신고의 이유가 되는 것은 '창작물의 수위'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참관하는 이벤트의 특성상, '성인 인증' 제도와 그 충실한 실행 여부에 대한 시비가 걸리는 경우가 잦다. 제도적 기준을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성인용 콘텐츠의 판매 및 유통에 있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여러 기준을 충족하지 않으면 금세 문제시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동인은 창작물에 성인물 표시를 명백히 하는 걸로 모자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가상의 성인이라는 사실을 명기한 뒤 모든 판매 물품을 꽁꽁 밀봉해서 미리 연령이 인증이 된 선입금 구매자에게만 창작물을 판매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한다. 사실상 '판매전'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행위를 강요당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노력을 해도 신고라는 변수를 정말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허위 신고를 처벌하는 규제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신고하는 측에서는 이를 남용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2차 동인 창작물의 저작권 관련 문제, 성인물 유통에 관한 문제는 각각 그 자체로 하나의 긴 탐구 주제가 될 정도로 복잡한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 2차 동인 시장의 영리화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해당 글을 통해 알아야 하는 정도는 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안을 이유로 외부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설령 처벌이나 직접적인 규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벤트를 향해 달아올랐던 동인들의 기분 자체가 식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정적 영향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왜냐하면 동인 활동은 어디까지나 본업이 아닌 취미의 영역인 경우가 대다수고,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취미 생활에서의 참여도와 적극성을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참여자 개개인의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감정에 대한 사안은, 사업자가 동인 시장에 들어와 이것을 영리화하기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


수익 구조화의 문제: 감정 비용 책정의 어려움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교환 행위의 집합(이를테면, 판매전)을 시장화하기 위해서는, 결부되는 모든 자본에 객관적이고 수치적인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자본에 속하는 것은 부자재 등 물리적이고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노동력에 대해 말해볼 수 있겠다. 아니 노동은 이미 옛날 고릿적에 시장화되어서 거래되고 있지 않은가요? 누군가가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수요 공급의 원리에 맞춰서 다른 재화와 크게 다를 것 없이 거래 및 유통된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이 인간으로부터 가장 직접적으로 창출되는 자본이고, 때문에 다른 물질적 자본이 가지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가령 '노동의 동기' 등에 생각해 보자.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일을 하고 있다면 동기는 무엇인가? '자아실현', '사회적 공헌' 같은 자소서에 쓸 만한 이야기를 배제하고 나면, 사실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동기는 '돈', 즉 금전적 이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은 생존을 의미하고, 말 그대로 먹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육두 문자를 남발하면서도 세수하고 교통수단에 몸을 실는다.


여기에서 동인계의 매력 포인트(?)이자 취약점인, 양날의 검 같은 속성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동인의 노동, 즉 창작물 생산의 동기는,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장르에 대한 관심과 창작 경험에 수반하는 즐거움과 성취감, 그리고 함께 하는 동인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사랑 등 다양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창작을 하던 와중에 재능이 빛을 발하고 인기를 얻음에 따라 예상치 못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취미와 부업의 어떤 애매한 중간 선에 걸친 활동을 하는 프로 전업 창작자들도 동인계에 공존한다. 그러나 그 누가 어떤 활동을 하든 간에, 가장 바탕이 되는 동기는 해당 장르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어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오늘날 한국 동인계의 불문율이다. 이는 2차 동인 창작계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서, 앞서 등장했던 저작권 이슈 등에 결부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원작자)의 작품을 활용해 창작을 하는 것은, 팬덤 기여와 융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용인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이외의 활동과 특히 이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제재의 대상이 될 여지를 가진다. 2차 창작계의 도를 지나친 저작권 남용과 사익 추구가 문제시되고, 이 때문에 활기찼던 동인 창작계가 제재를 받고 쇠퇴한 전례가 다수 있기 때문에, 진심을 가진 팬들은 이러한 사행성 장사 행위를 경계하고, 나아가 마치 자경단처럼 나서서 규제하려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 큰 공권력의 개입이 있기 전에, 내부에서 일을 정리하면, 정말로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애정'이라는 미묘한 시장 변수

애정의 가치

다시 판매전 등 동인 이벤트의 건으로 돌아가보자. 상술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2차 동인 행사는 대부분 비영리성을 정체성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표방한다. 이외보다 복잡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동인 이벤트에서 발생한 수익금을 기부의 형태로 환원하는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를 굉장히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2차 동인 시장은 법률상 그레이존에 속하는, 원작자의 관대함으로 용인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도를 넘는 이익은 벌어들이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럼 처음부터 전문 사업자가 들어와서 소득세 떼여가면서 공식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는 없는 곳이네?라고 말이다. 이 말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사실 글쓴이가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명료하게 설명 가능한 부분이 아닌, 조금 더 미묘하고 - 어떻게 보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2차 창작물을 통해서 직접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직 법률상 어렵더라도, 이 2차 창작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벤트를 주관해 주고 그 매니징 비용을 받아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까지 원 창작자의 저작권을 위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2차 창작을 장려하고, 그 와중에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위배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그런 법률상 부적절한 정도의 이익 추구를 하는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개로 처리되어야 하는 사안이지, 매니징을 하는 사람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묻기는 어렵지 않은가? 만약 법률적으로 2차 창작이 허가되고, 2차 창작을 통한 이윤 추구 및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이 인정되는, 그야말로 2차 창작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지는(죄가 아니게 되는) 세상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와! 그럼 이제야말로 사업자가 들어와서 어렵고 힘든 주최 일은 다 하고 동인들은 즐거운 창작과 소비만 하면 되겠네요? 안타깝게도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지는 않다. 언급했던 '감정'과 그것의 시장에서의 작용 문제 때문이다.



비대칭적 감정

감정이 이성보다 지배적인 동력이 되는 동인계는, 당사자들에게도 때로 정말 미묘한 공간인 것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미묘함'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수치화되고 객관화된 체계 속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간혹 글쓴이가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상상해 봤던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판매전에 가면, 지류 굿즈 중 흔하게 판매되는 것 중 하나가 작은 이미지를 코팅지 등에 인쇄한 '포토 카드(포카)'이다. 5x9 센티 정도 규격의 이 지류 굿즈는, 글쓴이의 경험에 미루어 보면 평균 1000원 정도의 가격에 판매된다. 그리고 판매전을 돌아다니다 보니 한 존잘(역량이 매우 뛰어나 인기가 많은 2차 창작자)이 2500원의 가격에 포토카드를 판매하고 있다고 해보자. 평균적 가격의 두 배를 상회하는 가격이다. 여기에서 소비러(구매자)의 머릿속에는 여러 상념이 겹친다.


동인 창작계의 특성 중 하나는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한 동인을 판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증하는 등의 제도가 전혀 없기 때문에, 누구나 해당 장르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등의 창작활동을 하면 '창작자'가 된다. 바로 이 점이 2차 창작 장르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다 보니 구매를 하려고 드는 '소비러'들도 굿즈 제작비 등에 대해서 정보를 해박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1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포카도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구매자는 알고 있다. 물론 아마추어 창작 시장이기 때문에 판매 수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판매자가 1인 노동력을 고스란히 투여해서 창작뿐 아니라 굿즈를 제작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데 드는 모든 일을 해낸다는 점 등이 고려된다. 이에 대부분의 소비자는 1000원을 달갑게 지불한다. 가격대가 더 올라가는 아크릴 굿즈나 분량이 긴 동인지 등에 대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에는 창작자가 자신과 같은 장르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가지고 소위 이 '돈도 안 되는 일'에 아낌없이 재능과 시간을 투자해 줬다는 데 기인하는 애틋함과 고마움이 포함된다. 어떻게 보면 '격려비' 등의 일환으로도 이 지불 비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격려비로 1000원을 지불하나, 2500원을 지불하나 똑같지 않은가? 게다가, 판매하고 있는 사람이 소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존잘'이라면, 더욱더 격려해서 마땅하니까, 더 많은 격려금을 지불하는 것이 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언뜻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단순한 일리 있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미묘한 동인계의 생리이다. 일단 이 주장에 대해 일리 있게 따져보자면 여타 판매자에 비해 대량 제작 및 판매 재고 소진이 용이한 창작자의 경우, 애초에 손실을 볼 기회가 적고, 이윤을 남길 확률이 크다. 따라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 가뜩이나 개인적 시간과 금전을 많이 상실했으리라는 명목의 격려금은 필요를 잃는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이게 아니다. 2500원짜리 포카를 손에 쥔 소비자는, '판매자(창작자)가 장르 번영을 바라서 이윤 추구가 아닌 목적으로, 즉 순수한 애정을 가지고 2차 활동을 하는 거라면 자기 굿즈 수요가 높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는 시장 원리에 입각한 행위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등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의 진심과 '애정'에 대한 의심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억지로 수치화해서 설명하자면, 소비하는 쪽은 장르를 사랑하는 마음을 100 정도 담아서 2500원짜리를 사는데, 파는 사람은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이 10 정도에 불과한, 부업 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 창작자인 경우, 이 둘 사이에는 1500원만큼의 애정도 차이가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운함'이라는 감정 역시, 1500원을 더 지불해서 생긴 금전적 손실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금전적 손실이 야기하는 '상대방고 나 사이에 있는 애정도의 격차'를 상상하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사업가에게서 애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 그럼 여기에서 이 '존잘'의 위치에 '사업자'를 넣어보자. 사업자는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 당연한 전제는 비용과 지출의 최소화이고, 수익의 최대화이다. 돈을 더 많이 받고, 덜 써야 한다. 실제 배포전 등 동인 이벤트에 가보면 주최의 '애정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서로 비교되는 상황을 왕왕 목격할 수 있다. 사실 동인 이벤트, 특히 판매전 등에 대해서, 참여객의 참여 의사 여부는 이벤트의 질에 따라 판가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주, 매달 열리는 행사가 결코 아니다. 그 때문에 열리면 간다, 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지만 이벤트를 방문하고 참여자가 느끼는 효용도와 만족감은 주최의 정성에 달려있다.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진 주최일수록 돈 되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꾸미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런 주최의 노력은, 참여자의 장르에 대한 애정도 및 자부심에까지 연결된다. 산술적 가치로 환원하기 어려운 각종 형태와 크기의 애정이 이벤트라는 물리적 장을 통해서 오가는 것이다. 이런 미묘하고, 수치화하기 어려운 가치의 창출을 위해 긴 시각을 가지고 당장은 돈 되지 않는 노력을 퍼부을 사업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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