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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준엽 May 21. 2017

화장실 소변기 vs 갤러리의 소변기

사전 설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법

남자라면 하루에도 한 번은 만나는 소변기(DAELIMBATH 제품)


이 이미지를 보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즉시 다음과 같은 생각의 흐름에 빠진다. '소변기네. 저건 깨끗하네. 저렇게 좀 쓰지...' 혹은 '이렇게 깨끗한 소변기가 어디 있어?'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을 해보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소변기에 얼음을 몇 개 띄우고, 시원한 물냉면을 먹는 상상 말이다. 생각만으로 구역질이 난다.


Fontaine(샘), 1917, Marcel Duchamp


그렇다면 이건 어떠한가?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이다. 마르셀 뒤샹은 20세기, 즉 현대의 미술을 한 단계 나아가도록 견인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다. 즉, 엄청난 작품이다.


이 정도로 설명을 마무리하고 다시 가정해보자. 만약 저 작품을 나에게 준다면 집에 두겠는가? 아마 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쁠 것이며, 우리 집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상전처럼 모셔둘 것이다.


작품에 대해 간단한 부연 설명을 덧붙이면, 작품에 있는 사인은 뒤샹의 것이 아니다. 그저 뉴욕의 화장실 용품을 제조하는 업자의 서명일뿐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그 소변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품의 '오리지널'버전이 내한하신다면 우리는 굳이 보기 위해 갤러리에 가고, 만지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한 번쯤 만지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기뻐하며 인증샷을 찍을 것이다. (#뒤샹#포스트모더니즘#감격...)


우리가 처음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서 그 대상의 개념은 달라진다.


결국 작품과 더러운, 혹은 냄새나는 소변기를 가르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다. 화장실에 배달되면 더러운 존재가 되고, 미술관 작품들 사이에 전시되면 '도자기'가 된다.(실제로 소변기는 도자기이다.)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출처: corbis>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이처럼 인식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지만 그 가치를 전혀 다르게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는 전화기가 갑자기 화면이 커지더니 터치가 되면서 버튼 누르는 맛도 없고 더럽게(?) 복잡한 물건이거나, 게임기가 전화와 인터넷까지 되는 유용한 물건일 수도 있고, 다양한 업무를 이동 간에 가능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회사의 연장선에 있는 작은 일터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모두 다 이를 스마트폰이라고 부른다.(이러한 개념을 UX에서는 '가치 모형'으로 설명한다.)


누가 누가 강력한 물줄기를 갖고 있는지 대결하러 가는 휴게소라는 인식을 만든 덕평 자연 휴게소


덕평 자연 휴게소는 일본의 '토이 렛츠'의 제품을 통해서 소변의 세기를 측정, 이전 사용자와 오줌 세기를 대결하는 게임을 도입했다. 덕평 자연 휴게소라는 이름과는 무색하게 남자들에게는 나의 '정력'을 측정하는 휴게소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실제로 방문율을 엄청나게 높였다. 동시에 휴게소까지 가기 위해서 참아야만 하는 불편한 시간을 게임을 위해 꼭 필요한 재화의 충전으로 인식을 전환시킴으로써 사용자를 휴게소까지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이처럼 소변기는 '더러움'의 상징에서 20세기 미술사를 뒤집어놓은 희대의 '문제작'으로, 지친 운전자에게 잠시나마 재미를 주며 휴게소의 매출을 상승시키는 '무료 게임기' 등으로 다양하게 인식된다.


'날씨'나 '기타'처럼 전혀 무관한 사실이 이성의 번호를 따는데 영향을 준다.


공유나 설리같은 외모 변수가 너무나 큰 아웃라이어는 배제한 실험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식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성의 전화번호를 따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한 실험을 살펴보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날씨가 흐린 날보다 맑고 화창한 날에 확률이 더 높았고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면서 접근했을 때 더 높은 효과를 보였다. 이외에도 기타를 매고 있는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더 높은 확률로 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음악을 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은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식은 무의식적 사전 설득으로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페이지의 배경화면은 실제 선택에 영향을 준다.


휴게소의 예시처럼 누군가의 이득과 우위 선점을 위해 우리의 인식이 조작되기도 한다. 일종의 '사전 설득'으로 말이다. 사전 설득과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가 많은데 요즘 같이 온라인 쇼핑을 하는 우리가 흔히 '왜 이걸 샀지?'라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과 관련된 실험이 있다. 바로 들어가는 대문 페이지나 배경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파를 판매하는 페이지의 대문이 '구름' 패턴일 경우에는 조금 더 푹신한 소파를 선호하였고, '동전'패턴을 노출하면 더욱 저렴한 상품, 즉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는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즉, 무의식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것을 단 한 번만 인식함으로써 불합리한 선택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영향력을 인식하게 한다면? 예를 들어, '날씨가 좋죠?'라던지 '제가 음악을 하는데...' 등으로 무의식적인 것을 상대에게 인식시키면 그 영향력이 사라졌다. 결국, 무의식적인 영향력은 우리가 살짝 그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후회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행동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진정 결혼에 최고의 조건인가? 무의식적 사전 설득에 속아서는 안된다.  '응? 아닌데. 사전 설득시키려는 것이네.'라고 한 번만 인식하면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미학과 철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이야기한 인식에 대한 담론은 오히려 2017년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선택의 기로에서 지친 우리는 누군가의 생각과 사전 설득에 의해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는 자아가 무의식적 색안경에 의해 점차 사라지는 지금,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실행할 때 이렇게 한 번만 물어보자. '이거 왜 하지?' 혹은 '다른 무언가가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 한 번의 질문과 인식은 우리의 삶을 조금씩 나답게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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