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과 레플리카의 차이
며칠 전 일이다. 아는 지인이 여행지에서 평소 관심을 가진 한정판 운동화가 시장에서 단 돈 7만 원인데 사겠냐는 것이다. 단 돈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것은 현재 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40만 원도 넘는 금액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신발이 아닌 지인의 마지막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레플리카'가 15만 원 정도라는 것이다. 응? 레플리카가 15만 원이라고?
우선, 실제로 그 정도의 가격대에 거래되는지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시작했다. 상호명과 함께 레플리카를 더하여 검색을 하자 수많은 후기와 실제로 그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는 매물들이 눈에 띄었다.
검색에 물이 올라서 관심 있던 시계와 의류, 심지어 가구까지도 레플리카와 함께 검색을 하니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msg를 조금 첨가하면 정품보다 레플리카를 달고 나온 상품이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헌데, 이것들이 정말 레플리카일까? 평소 '틀리다'와 '다르다'가 유난스럽게 불편했던 모난 심성이 당연스레 통용되는 이 용어의 가치를 선명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우선, 아래의 조각을 살펴보자.
위 조각의 공통점을 발견했나? 그렇다. 모두 동일한 조각이다. 이 조각들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칼래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인데, 신기하게도 세계 여러 군데에서 상설로 전시를 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이외의 다른 공간에서 전시되는 조각들은 모조품으로 규정해야 할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를 우리는 '레플리카'라고 부른다.
레플리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반되는 조건들이 있다.
우리가 쉽게 붙이는 '레플리카'라는 지위는 사실 아주 까다로운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일 작가에 의해 제작되어야 한다.
동일 크기와 동일 수법으로 제작되어야 한다.
작가가 사망한 경우, 신뢰성 있는 미술관에서 보증을 선 '카피(copy)'만을 레플리카로 인정한다.
즉, 레플리카는 동일 작가가 기존의 방식을 통해 동일한 크기로 만든 것만을 인정한다. 쉽게 이야기하여 우리가 혼재하여 사용하는 '카피'보다는 오히려 '재입고'에 가까운 의미이다. 재입고된 상품의 가격이 기존과 동일하게 형성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레플리카도 오리지널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닌다.
판화는 작가가 찍어낸 만큼 그 자체가
오리지널이다.
하지만 판화는 예외이다. 판화는 작가가 찍어내는 하나하나가 모두 다 '오리지널'이다. 하지만 위의 기사처럼 판화에는 여러 가지 시비의 소지가 있다.
우선, 작가가 직접 찍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사인과 넘버링(예를 들어, 31/100)이 있는 것은 모두 오리지널로 규정한다. 여기서 넘버링이 빠르면 더 비쌀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프레스의 압력, 습기 상태, 운에 따라서 생기는 미묘한(?) 차이가 작품 가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위의 기사처럼 시비가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 판화가들이 원판을 남기고 죽는 경우에 일어난다. 대부분 작가들은 넘버링한 작품을 다 찍어내면 원판을 부숴버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후손들이 공장에서 상품을 찍듯이 신나게 찍어내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작품은 위의 판결처럼 레플리카도 오리지널도 아닌 '죽도 밥도 아닌 것'으로 규정된다. 즉, 작가와 작품을 두 번 죽이는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인 것이다.(이는 나의 견해이다. 작가의 순수한 의도를 파괴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수단으로 전락한 작품은 상업의 매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짝퉁'을 사랑한다. 물론, 해외와 판이한 가격으로 한국 소비자를 때때로 '봉'으로 삼는 외국 브랜드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든다는 미명 아래 가끔은 인정하고 싶지만 그 도가 지나치다.
위의 장면은 그런 고 퀄리티 짝퉁에 너무나 크게 상처를 받은 의류 브랜드 베트멍(Vêtements)이 짝퉁 디자인을 도용하여 정품을 만들고, 이를 한국에서 판매를 통해 제대로 일격 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나 부끄러운 대목이다.
문제는 짝퉁을 포장하기 위해 레플리카를 사용하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레플리카는 카피가 아니다. 짝퉁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짝퉁을 레플리카로 표현한다. 심지어 기사에서도 합리적 구매의 형태로서 짝퉁을 레플리카로 설명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진짜를 사는 것이 비합리적인 구매인 것처럼 포장하며 짝퉁을 레플리카로 설명하는 전문가나 판매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사고의 차이를 만들어 내듯이 적어도 짝퉁이 만연한 소비 시장에서 레플리카와 짝퉁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접근한다면 조금 더 풍족한 소비를 하리라고 믿는다.
P.S: 글을 쓰고서 그 짝퉁을 사지 않겠다고 메시지를 전송하였다. 아,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