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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마실 Sep 08. 2018

스웨덴 직장 문화: 출퇴근

인턴의 눈으로 보는 스웨덴 회사 1

이미지 출저: Imagebank Sweden / Photo by Lena Granefelt / Title: Workplace environment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운 토요일이다. 스웨덴어, 프로그램 강의 수강, 업무 관련 서류 준비 등 사실 할 일은 많고, 오전 내내 일을 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마 3주 전에 시작한 인턴십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확히 8월 20일부터 스웨덴 정부 기관 산하에 있는 한 기업에서 인턴십을 시작했다. 아무리 준 정부 기관이라고 해도 정부 기관이다 보니 공식 언어는 스웨덴어. 거기에다 회사원의 90% 가까이가 스웨덴 사람이다 보니 나의 고질병인 원어민 울렁증 (원어민 앞에서만 긴장함, 예를 들어 스웨덴 사람 앞에서 스웨덴어를 쓰는 경우 버퍼링이 엄청 걸린다..) 때문에 처음 2주일은 정말 피곤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 스웨덴어로 말하는 것도, 통근도 익숙해졌다(Uppsala - Stockholm, 난 웁살라에 살고, 회사는 스톡홀름에 있다). 그러고 나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율적인 출퇴근 시간

내 공식적인 업무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7시 까지다. 그래서 보통 회사 사무실 내 자리에 오전 8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도착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어느 날은 출근길에 내가 회사로 들어가는 키를 (보통 스웨덴어로는 bricka라고 한다) 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스웨덴 회사는 보통 Kontorslandskap이라고 해서, 지정석을 따로 두지 않고 먼저 온 사람이 사무실 자리 중 맘에 드는 곳을 앉으면 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업무 노트북, 업무용 휴대전화를 회사 내 캐비닛 (skåp)에 놓고 다니거나 가지고 다니는데 나는 보통 노트북을 내 캐비닛에 놓고 다니는 사람이므로 내 bricka가 없으면 말 그대로 회사에 커피만 마시러 가는 꼴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 시간이 오전 7시 10분이었는데 내가 보통 타는 기차는 7시 20분 기차이므로 이미 그 기차는 포기하고 7시 48분 기차를 목표로 전속력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서 버스를 타고 내려서 기차역에서 4km 거리에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서 통근 기차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왔는데 회사에 일찍 도착하려고 탄 스톡홀름 지하철에서 길을 잃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상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 지금 스톡홀름 지하철인데 이 라인은 처음 타봐서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한 8시 50분쯤 갈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아냐, 전혀 문제없어. 언제 오는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난 9시 10분쯤 갈 것 같으니까 그때 봐~"


언제 오는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한국에서 조금 이나마 사회생활을 해 본 나로선 이 개념이 매우 낯설었다. 그래서 난 항상 8시 반부터 17시까지 일을 하는데 (일찍 나가거나 늦게 오면 등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내 상사 혹은 다른 직장 동료들은 9시 반에서 10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3시에서 4시에 퇴근하기도 하며 심지어 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물론 나야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이니 집에서 일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내 직속 상사의 경우 남자분인데 내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만 해도 일주일이나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쉬었다. 아이가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방과 후 교실인 Dagis 가 휴업이라도 하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 근무뿐만이 아니라 퇴근도 자유로운데 첫 주인가 둘째 주에 가지러 갈 것이 있어서 캐비닛에 갔다가 직속 상사분이 "이번에 정말 수고했어. 집에 가는 거야? 담주에 봐~/내일 봐"라고 말하셔서 정말 당황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다들 보통 오전 9시부터 3시까지 근무하고 그 외에는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할 일 없으면 집에 가라고 쿨하게 말해줬다... 부서장, 즉 우리나라로 치면 부장님도 마찬가지. 일 관련해서 물어보러 갔더니 일 몇 가지를 잡아주고 "오늘은 일이 없네~ 이제 집 가!"라고 말씀하셨다.



일이 있으면 하고, 끝났으면 가라

물론 내가 아직 햇병아리 인턴이라 일이 많이 없어서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처음엔 일이 거의 없었다가 점점 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이 있으면 하고, 끝났으면 집에 가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이다. 그래서 일이 많으면 늦게 까지 일하기도 하고 일이 없으면 대개 4시부터 퇴근을 시작한다. 처음엔 인턴인데 직속 상사, 다른 직원 심지어 부서장이 모두 일을 하고 있는데 집에 가는 게 참으로 부담스러우면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는 중이다. 생각해 보면, 할 일도 없는데 (없는 일도 찾아서 했는데) 끝까지 남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훨씬 비효율 적이다. 물론, 부서장으로 일하는 분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일을 하신다 (인턴 처음 시작할 때 메일을 받은 날도 일요일이었고, 부서장님이 보낸 메일이었다). 남자 친구한테 퇴근할 때마다 부서장님이 일을 하면서 인사를 하시는데 뭔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라고 했더니 딱 한마디 했다.


"부서장이라며, 당연히 너보단 일을 많이 해야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그냥 조용히 인사하고 퇴근하는 중이다.


애증의 Bricka. 그 사건 이후론 매일 출근 전 목걸이를 매고 나간다...



아직 스웨덴 회사에 정식적으로 취업한 것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출퇴근에 관한 스웨덴의 직장 문화가 얼마나 합리적인지는 겨우 3주 동안 일한 나도 알 수 있었다. 다음 편으로는 지금 한국에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 육아 휴직 (스웨덴어로는 보통 föräldraledighet이라고 하는데 mammaledig, pappaledig - 각각 엄마 휴직, 아빠 휴직이라는 뜻 - 이라고도 편하게 부른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맛보기로 조금만 이야기하자면 우리 부서에만 해도 pappaledig, mammaledig 중인 분이 매우 많고 이를 대처하기 위한 제도도 잘 정비되어있다. 그리고 내일 있을 스웨덴의 지방선거 (kommunvalet 2018)에 대해서도 곧 쓰겠다. 

웃으면서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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