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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새로운 생존법 ‘A24’

그들은 견고한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어떻게 ‘생각의 틈’을 찾았을까

by K Duck Mar 21. 2025
2025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션 베이커'의 수상 소감(출처 : Youtube 채널 'Screen Time')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을 정도라면 수상 순간에 고마워할 사람도 많고 할 말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션 베이커(Sean Baker)’는 수상 소감의 대부분을 영화관의 위기, 영화라는 문화의 상실에 경종을 울리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소감 말미에는 할리우드의 배급사들에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개봉하는데 더 많이 집중해 달라고 간절한 부탁까지 합니다. 영화의 본고장 미국마저도 팬데믹 이후 영화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짧은 수상 소감 하나로 알 수 있어서 씁쓸한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락 추세인 할리우드의 분위기에서 나 홀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영화 배급사이자 제작사가 있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은 션 베이커 같은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영화감독들을 무더기로 발굴해 낸 ‘A24’라는 영화사입니다.


영화사 'A24'의 인트로 로고 (출처 : Youtube)


2012년 영화광 3인에 의해 설립된 ‘A24’는 소위 말하는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를 배급하며 본격적인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에 적응해 갑니다. ‘A24’가 전 세계의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2017년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습니다.


‘A24’가 직접 제작까지 맡으며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Moonlight>는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라라랜드 La La Land>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마지막 작품상 시상에서 역대 최악의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역대급 사고가 발생한 2017년 89회 오스카 작품상 시상식 (출처 : Youtube 채널 '디글')


너무나 유명한 사고라서 다들 기억하겠지만, 이 사고로 인해 <문라이트>는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문라이트>가 <라라랜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수상한 것도 이변인데, 시상 작품 발표 사고까지 터지니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죠.


게다가 설립한 지 5년이 채 안된 스타트업이 제작한 영화가 그렇게 어렵다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아버리니 할리우드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후에도 ‘A24’는 작품성 높은 영화들을 꾸준히 배급하면서 명성을 키워갔습니다. 그 정점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에올>) 였습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메인 포스터


<에에올>은 공개 이후 158개의 상을 휩쓸고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에 오르며 ‘A24’ 스타일이 할리우드의 주류에 올랐음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도 제작, 배급한 <부르탈리스트 The Brutalist>로 남우주연상 포함 3개 부문을 수상하며 할리우드가 가장 주목하는 예술영화 제작사이자 배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A24’가 찾은 할리우드의 3가지 ‘틈’은?


그러면, 무엇이 ‘A24’라는 10년을 갓 넘긴 영화사를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들었을까요?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는 이를 3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창작자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


먼저, ‘창작자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입니다. 할리우드는 보기와는 다르게 제작 영화에 대한 외부의 입김이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오죽하면 아카데미를 휩쓸고 할리우드 제작의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도 협상의 첫 번째 조건으로 ‘편집권의 자유’를 말할 정도이니까요.


비즈니스 관점으로 자본을 투입한 영화사의 권력이 큰 할리우드에서 영화광 출신들이 만든 ‘A24’는 정반대의 전략을 취합니다.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에 대한 무한대의 보호와 우대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의 퀄리티를 극한으로 높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창작자가 모든 전권을 가진다고 반드시 영화가 잘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A24’는 뛰어난 선구안으로 좋은 감독들을 잘 발굴해 이를 보완합니다. 드니 빌뇌브, 노아 바움백, 그레타 거윅, 소피아 코폴라, 아리 애스터 등 최근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감독들 중에 ‘A24’를 거치치 않은 감독이 없을 정도입니다.


독창적인 마케팅 전략


최근 국내 영화관은 관객의 감소에 대응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영화와 관련된 굿즈를 제공하는 방법입니다. ‘A24’는 영화 배급 초기부터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아예 자신만의 온라인 쇼핑몰(www.a24flims.com)을 구축하고 다양한 제품의 굿즈와 상품들을 판매하며 관객이 영화에서 겪은 경험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는 ‘A24’가 추구하는 예술 영화 감성을 좋아하는 팬들의 덕후적인 기질을 잘 파악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홍보에 있어서도 소셜 마케팅을 가장 먼저 사용한 영화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립 초기에 제작한 영화 <엑스 마키나 Ex Machina> 홍보에서는 ‘틴더 Tinder’ 어플에 여주인공 챗봇을 만들어 이를 유저와 소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흔한 마케팅 방식이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독창적인 마케팅으로 극찬을 받았죠.


다양성에 대한 시선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전략은 ‘다양성’입니다. ‘A24’가 예술영화 전문 제작과 배급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활동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핵심은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흑인과 퀴어 영화를 넘어서 아시아 영화에까지 폭넓은 관심을 가진 영화사라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 결과물로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인 <미나리>와 <패스트 라이브즈>, <에에올> 그리고 넷플릭스 시리즈인 <성난 사람들 Beef> 등이 있습니다. 이는 ‘A24’가 주로 활동하는 할리우드의 오래된 가치와도 연관이 깊습니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 격인 Cecil B. DeMille 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 (출처 : Youtube 채널 '한국본부메릴스트립 정보봇')


7년 전 메릴 스트립의 유명한 수상 소감에서 언급되듯이 할리우드가 그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머물고 있는 핵심 가치는 바로 ‘다양성’입니다. 차별 없이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노력 끝에 성공할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성이 할리우드를 가장 높은 위치에 머물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A24’의 성공은 이런 다양성과 능력 중심의 인재 발굴, 독창적인 브랜딩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불과 13년 전에 창업해 스타트업의 한계를 돌파한 영화사 ‘A24’를 우리가 분석해야 할 이유도 분명합니다. 거대한 할리우드도 아직까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듯이 어느 시장도 불가능은 없습니다.



2024년 미국 유명 매거진 '버라이어티 Variety'는 'A24'가 제작, 배급한 영화 순위를 매겨 Best 35편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국내에서 OTT 플랫폼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키노라이츠'(m.kinolights.com)에서 친절하게 정리를 해줬습니다. 어느 영화를 골라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35편의 영화 중에서 한 편을 골라 감상할 수 있는 편안한 주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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