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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로드 Feb 04. 2021

도자기 인형놀이:로열덜튼과 피겨린_21

영국도자기마을: 스톡온트렌트


 신데렐라, 백설공주같이 디즈니 만화에 치마폭이 풍만한 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 화려한 색깔로 장식된 구두. 미국에 바비 인형이 있다면 한 세기 전 영국인들은 로열 덜튼(Royal Doulton) 공장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에 열광했다. 


로열 덜튼 예전 공장, 스톡 온 트렌트,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 예전 공장, 스톡 온 트렌트,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 예전 공장, 스톡 온 트렌트,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의 시작

로열 덜튼(Royal Doulton) 도자기 공장의 스토리는 약 200년 전인 18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런던 풀햄 공장 (Fulham Manufacturing Co.)에서 도공으로 일하고 있던 존 덜튼 (John Doulton)은 불과 22살의 나이에 도자기 무역을 배운 후 자신이 모은 전 재산 100파운드를 가지고 작은 도자기 회사를 차렸다. [2] 마사 존스(Martha Jones)와 존 와츠(John Watts) 두 파트너들과 함께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강  둑 주변에 있는 와츠 앤 덜튼  포터리(Watt & Doultonpottery)가 이로써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당시 영국에 유행하던 스톤웨어 병, 쨈 병 등을 만들었는데 20세기 초반부터 핸리 덜튼(Henry Doulton)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비로소 회사가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화장실에 놓는 위생 도자기, 워터 필터를 만들기도 하였고, 세계 최초로 소금 유약 스톤웨어 파이프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피겨린이란

로열 덜튼의 피겨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전반적인 유럽 피겨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의 전공분야이기도 하므로 많이 많이 이야기하고 싶지만 자중하며ㅎㅎ)


피겨린은 영어로 Figurine이라고 쓰는데 보통 피겨린을 피겨(Figure)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겨라는 단어에 -ine가 붙어 피겨린이라고 하면, 피겨보다는 작은 인형 사이즈를 말할 때 더 많이 사용한다. 



정치, 외교에 사용되었던 피겨린

피겨린 발생은 원래 왕실의 테이블 세팅을 위해 만들어졌다. [3] 이전에는 설탕이나 왁스를 이용해 만들어서 만찬에 사용했던 장식들이 18세기 자기의 발명(독일 마이센)과 함께 포셀린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테이블 세팅 안에서 피겨린의 주제는 초창기에는 주로 정치적인 충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었고, 이러한 목적으로 선물로 주고받는 일이 많았다. 한 가지 예로는 1713~14 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친척인 조피(Sophia of the Palatinate, Sophia of Hanover 1630 – 1714)에게 포셀린을 선물했다. 여기서 도자기는 단순한 선물이 아닌 유럽 왕실 외교를 위해 처음으로 도자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이  있다. 당시 아우구스투스가 폴란드 왕좌를 얻기 위해서는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와 정치적 압력에 시달렸다 한다. 조피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와 가톨릭을 모두 가지고 있는 지배층 가족에서 왔기 때문에 아우구스투스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도자기 선물을 한 것이다. 강건왕 자신이 열정적인 포셀린 수집가이자 감정가였기 때문에 도자기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로의 선물은 확실히 그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나중에 조피는 영국 왕 조지 1세의 어머니가 된다. 그 이후에도 명성을 많이 얻은 마이센의 피겨린이 정치적 외교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 일은 큰 공헌을 했다 [4]


피겨린이 정치적인 목적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피겨린 장식은 만찬 테이블 세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극한다. 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고, 당시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 등 오늘날로 치면 셀럽들을 모델링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코스가 끝날 때마다, 음식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피겨린 세팅도 바뀌었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수집하는 피겨린

피겨린의 기원이 독일에서 왔기 때문에 실제로 영국에서 만들어진 피겨린이 18세기 마이센 포셀린 피겨린을 본떠 만든 예시가 많다.  한 예로, 지금까지 영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받는 퍼그(pug dog) 피겨린은 사실 독일 마이센 (Meissen) 공장의 작품이었다. 퍼그 강아지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의 가장 사랑하는 애완견이 되면서 19세기에 영국에서도 피겨린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어서 여전히 다양한 디자인의 퍼그 피겨린을 많이 볼 수 있다.


포셀린 생산과 기술에 한 발짝 뒤처져 있던 영국은  피겨린뿐만 아니라, 그릇도 독일 드레스덴 지방에서 수입해 그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이는 당시에 흔한 일이었다. 그 증거로 1751년 첼시 포셀린 공장 (Chelsea Porcelain Factory)의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스피리몬트(Nicholas Sprimont)의 서포터 에버라드 경 (SirEverard Fawkener) 은 독일 드레스덴 왕궁의 영국 특사에게 마이센 공장의 포셀린 작품과 가격을 요청하는 특별요청 편지를 썼던 기록이 있다. [5]


마이센에서 만들어진 퍼그독 피겨린, 독일 마이센 뮤지엄 소장, 사진 김선애
마이센에서 만들어진 피겨린을 따라한,  스태포드 셔에서 제작된 피겨린


19세기에는 상류층을 위한 백자의 도자기 피겨린이 계속 유행하던 가운데에서도 영국 서민들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도기 흙(earthenware)으로 만든 스태포드셔 피겨(StaffordshireFigure)로 불리는 도자기 인형들이 만들어졌다. (더 포터리스 뮤지엄 편 참고 - https://brunch.co.kr/@dojaki/98)  사진과 같은 로우테크(low-tec)로 만들어진 퍼그 도자기 피겨린을 보면 마이센의 퍼그와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섬세하지는 않지만, 영국 서민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는 피겨린이다. 퍼그독 뿐만 아니라 많은 영국 도자기 피겨린은 그 시대의 시각적인 일상의 기록물이었다.


아래 사진은 19세기 피겨린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키스를 하고 있는 커플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있는 듯한 사진으로 사랑에 녹아버린 남녀라고나 할까!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떠오른다. 

 

Figure, V&A 컬렉션,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의 컬렉터블 피겨린

로열 덜튼의 피겨린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시기는 1877년 핸리 덜튼이 스톡 온 트렌트 지방의 파인더, 본 앤 코 회사 (Pinder, Bourne and Co.)의 주식을 매입하고부터이다. 역시 주식의 힘이란!


 19세기 후반의 로열 덜튼 공장은 피겨린 생산(Figurine-making)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피겨린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 최초의 국제 박람회였던 1851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 만국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를 계기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도 수출했다 한다. 지금도 앤티크 시장에서 많이 보이는 로열 덜튼의 HN 시리즈 피겨린은 당시 페인팅 감독이었던 해리 닉슨(Harry Nixon)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지금까지 HN 시리즈는 5000가 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1913년에 도입한 넘버링 시스템(피겨린에 제목 말고도 번호를 붙여서 확인하고 수집할 때 용이할 수 있게 한 것)은 수집가들에게 매력적인 수집 가치가 있는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그 역사가 깊어서 피겨린에 표현된 옷이나 색상 등으로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로열덜튼의 HN 시리즈 중에서도 프리티 레이디스(PrettyLadies)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소장가치가 높은 컬렉터블 피겨린이다. 19세기, 20세기에 제작된 프리티 레이디 피겨린과 비교해 물론 지금은 디자인이 바뀌고 스타일도 현대화되었지만, 아직도 로열 덜튼 피겨린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요소들을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로열 덜튼 피겨린은, 구매자가 어떤 목적으로 구매해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Faraway, V&A(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전시 중인 Doulton & Co. 의 피겨린 작품, 1958년, 모델러 Peggy Davies, 사진김
Sweet Sixteen, V&A에 전시 중인 Doulton & Co. 의 피겨린 작품, 1958년, 모델러 Peggy Davies, 사진 김선애


로열 덜튼 브랜드의 지금

많은 스톡 온 트렌트의 도자기 공장들도 그러했듯, 로열 덜튼 공장 또한  2004년 원가 절감을 위해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로 옮기고 피겨린도 그곳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웨지우드가 로열 덜튼을 인수하고 지금은 로열 덜튼 안에 로열 알버트(Royal Albert), 민턴(Minton) 라인을 넣어 브랜드로 옛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6] 


로열 덜튼 공장은 이제 문을 닫았지만, 브랜드는 2015년에는 20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작품 생산도 진행하였다. 또한, 몇 년 전부터는 영국의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 디자이너 서 테렌스 콘란(Sir Terence Conran) 등 유명 디자이너, 레스토랑 오너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테이블, 키친웨어를 론칭했다. 회사의 창립 연도를 기념하는 뜻에서 만들어진 1815년 시리즈도 있다. 


로열 덜튼 공장 아웃렛 전경. 로열 앨버트 라인이 진열된 것이 보인다. 사진 김선애

 

WWRD (웨지우드, 워터포드, 로열 덜튼) 공장에서 제작 중인 피겨린의 뒷모습, 사진 김선애
WWRD 공장에서 제작 중인 피겨린, 사진 김선애
WWRD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도공, 사진 김선애

 


랜선 로열덜튼 공장 방문하기

 https://youtu.be/gjURpKx0rEM


https://www.royaldoulton.com/en-kr/collections/figurines



로열덜튼 공장 방문하기

지금의 로열덜튼 공장은 WWRD LTd. 회사로 들어가서 웨지우드, 민튼, 로열 알버트와 함께 공장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함께 쓰기 때문에 로열 덜튼 공장 투어나 박물관이 따로 없다. 예전 공장 흔적을 보고 싶으면 나일 스트릿(Nile Street)에 남아있는 공장의 외관을 멀리서 구경할 수는 있다. 로열 덜튼 도자기는 영국 전역의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쉽게 접할 수 있다.

 



[1] 피겨린은 도자기로 만든 작은 사이즈의 인형으로 사람, 신,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처음으로 누가 피겨린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문헌적으로는 불분명하지만 18세기 때 유럽에서 유행하던 도자기 인형을 지칭한다.


[2] The Doulton History, Royal DoultonAntiques, visited 3 May 2015, htp://www.royaldoultonantiques.com/historyroyaldoulton1.htm


[3] 2014년 4-6월호 월간 도예에 실린 ‘도자기 피겨린으로 바라본 18세기 영국의 문화와 인생’ 참고(필자 기고글)


 [4] Marcus Köhler, Porcelain andDiplomacy at the Courts of Hanover and Cologna, in: Fragile Diplomacy, hg.Maureen Cassidy-Geiger, London 2007, S. 195-208.


[5] W.B.Honey, Dresden China: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Meissen Porcelain, London:Faber and Faber, 1954, p.78. 


[6] 로열 알버트는 토마스 와일드 시니어(Thomas Wild Senior)가 아들 토마스 와일드(Thomas C. Wild)와 함께 스톡 앤트 렌트 롱턴에 있는 알버트 웍스(Albert Works)를 만들면서 생겨났다 민턴(Minton)은 1798년 토머스(Thomas Minton)가  세운 도기 도자기 공장이었으나 점차 포셀린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824년 이후 로코코 운동과 프랑스 포셀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새로운 라인과 형태를 디자인 함으로 점차 그 명성을 쌓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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