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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Dec 31. 2018

이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Adios 2018

연말은 참 재미있는 시즌이다.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자기 반성을 하지만, 그 여느때보다 과식과 과음에 관대하다. 내년이라고 해봤자 기껏 다음주인 것도 재밌지만, 연말만 되면 우리가 지나온 365일과 딱히 다를 바 없을 그 다음의 365일이 영겁이라도 되는 냥 온갖 다짐이 쏟아진다. 물론 올 한 해를 시작할 때의 나 역시도 그랬다. 술을 퍼마시면서 건강해질테다! 라고 파이팅 넘치게 다짐했는데, 떠올릴수록 우스운 그 컷이 이미 명백하게 말해주듯 나는 전혀 건강하지 못하다.


건강과 젊음은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하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유약해지는 것 처럼 마음도 조금은 생기를 잃어서인지, 올해는 유독 낯선 질문들이 많았다. 낯선 답들은 그보다 더 많았고, 답하지 못한 질문은 가장 많았다.


생각해 보면 달라진 것이 참 많은 한 해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조금 줄었고, 싫어하는 것들은 더 많이 줄었다. 마음이 흔들거리는 궤도가 작아졌고, 그만큼 마음의 무게는 조금더 무거워졌다. 머리카락 길이가 짧아졌고, 하루는 조금더 길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줄었고, 같이 하는 것들은 더 줄었으며, 규정할 수 있던 것들은 더 헷갈려 졌지만, 헷갈리던 것들은 조금더 명확해졌다. 당연한 것들이 줄어들었고, 다짐하는 것들은 많아졌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들과 하기 싫은 것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올해 바라던 것과 바라지 않던 것들을 모두 이뤘다. 바랐던 것들이 더이상 바라지 않는 것이 되기도 했고, 바라지 않던 것들이 바라는 것이 되기도 했다. '이랬으면 좋겠다',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의 마음들은 언제든 반대로 변할 수 있는 거라는 게 무척 재미있는 발견이었던 한 해였다.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원하는 건 모순이 아니라 인간적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늘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좋든 싫든 고개를 끄덕이던 한 해였다. 어른이 되고 있단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애처럼 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새해가 찾아오면 올해가 지나간다. 새해 역시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어떤 것들이 남을지 상상해 본다. 늘 그랬던 것 처럼 좋아하는 것들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 미련이나 후회 같은 신파를 어떻게든 좀 치워둔다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정도는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좀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 마음과, 이제는 그만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은 늘 함께 있을 것이다. 상처는 아물테지만 상흔은 아주 오래 남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 모르니까, 그래도 하나라도 더 좋은 것들을 남길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무서워서 피하지 않고, 괴로워서 참지 않고, 피곤해서 말아버리지 말고. 이 모든 것이 지나고 났을 때 한 글자라도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길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녹록치 않더라도, 그래도 어엿하게 지나기를.


2018년 12월 31일.

https://www.youtube.com/watch?v=PqtF7ttf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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