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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Jun 25. 2020

텔레토비 벽지

Part Time Writers - 어린 시절 방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가난했다. 나는 어렸지만,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부터 가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나에게 가난의 정도를 가늠할 가장 좋은 지표는 우리집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느냐였다. 대로 변에 있던 단독주택에서 빌라로, 빌라에서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 마을로 이사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갔고 도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우리가 가장 가난했던 시절, 내가 열세살에서 열네살이 되는 그 중간의 어디쯤 이사가게 된 집은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있는 아파트 였다. 이름만 아파트지, 5층 반짜리 건물이라 엘레베이터도 없었다. 물론 우리집은 그 건물의 맨 윗층이었다. 끙끙대며 오르내리던 계단을 주말마다 직접 청소해야 했던 그 수고스러운 집의 가장 안쪽 방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나의 방이다.   


그 방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벽지다. 형편이 퍽퍽해도 세상에서 딸을 가장 사랑하는 아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똑같은 벽지로 도배하면 돈도 좀 아낄 수 있었을텐데, 아빠는 나에게 방의 벽지를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 시절 나는 곰돌이 푸에 폭 빠져있었고, 오빠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자기 방 벽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특별한 혜택에 한껏 신이 나 곰돌이 푸 벽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얼추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해도 꿀단지를 안고 있는 푸로 도배된 방에서 잠들면 좋은 꿈을 꿀 것만 같다.  


하지만 이사한 집 내 방에 뛰어들어갔을 때, 날 반겨준 벽지는 곰돌이 푸가 아니라 텔레토비였다. 전후사정은 듣지 않아도 뻔하다. 벽지 사장님은 곰돌이 푸 이런 건 잘 모르겠고, 대충 보니 캐릭터 좋아하는 여자애인 거 같은데,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텔레토비가 대세니까 이걸로 하면 좋아할 거라고 하셨겠지. 아빠 말로는 인기 많은 벽지라 돈도 더 줬다고 했었다. 


자신만만하게 방문을 열어주던 아빠의 기대와는 달리, 텔레토비로 도배된 방을 본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빠가 특별히 신경써서 해 준 거라는 것도, 어차피 우리집에 벽지를 다시 해 줄 돈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서 눈물을 참으려 애썼지만 난 울음을 잘 참지 못했다. 어떻게든 힘을 내서 ‘이것도 귀엽네. 고마워’ 라고 말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살에게 그 정도 여유가 있을 리 없다.


텔레토비 벽지가 창피해서 난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정말 친한 친구나 오빠의 친구들이 집에 오게 되면, 나는 곰돌이 푸를 원했는데 벽지 사장님이 내가 어린 아이인 줄 오해해서 나도 모르는 새 텔레토비 벽지가 되어버렸다는 설명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 물론 그들은 관심이 없었지만 나는 그들이 관심 없다는 사실에 관심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취향이라는 것이 보여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에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다. 가난한 것은 부끄럽지 않았지만 가난으로 인한 취향의 빈곤은 부끄러이 여겼으니 말이다. 취향을 뽐내고 싶어하던 20대 시절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컴플렉스로 뒤틀린 허세. 뭐 그런 거.


가난은 참 기묘하다. 지나고 나면 으스댈 수도 있는 에피소드고 가끔씩은 그 시절이 그립다며 애수에 젖기도 하는데, 이가 현재일 때는 그토록 비참하고 추접스러운 게 없다. 모든 것에 조바심을 내던 10대 시절, 사랑으로 가득찬 따뜻한 마음에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이렇게 가난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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