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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Aug 09. 2021

일의 기쁨과 슬픔


이 회사를 참 오래 다녔다. 처음 들어왔을 땐 회사도 나도 지금보다 어렸고, 더 조그맸다. 다들 엄청 까불었고, 정상은 아니었고, 어떤 부분에선 천재적이기도 했다. 스펙으로 따지면 아직도 왜 뽑혔는지 모르겠는데, 의사결정이란 것에 딱히 겁이 없던 나도 이 회사에 퍽 잘 어울리는 직원이었던 건 맞다. 누군가 힘들어 하면 물불 안 가리고 가서 도와줬고,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으면 그냥 내가 알아서 했고,  시작이 안 되는 일들도, 시작만 하고 빙글대던 프로젝트들도 나한테 오면 반드시 끝장이 났다.




일이 참 소중했다. 일 때문에 많이 울고, 또 많이 웃었다. 우리 게임이 처음으로 1등을 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 광고에 열광할 때, 새로운 게임이 드디어 런칭을 할 때, 오래된 게임이 갑자기 역주행을 시작할 때, 항상 나는 그 최전선에 있었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좋은 시기에 좋은 회사에 들어와 좋은 성과를 냈다. 아마 이 회사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전 보다 더 커졌고, 더 느린 속도로 새 게임을 내고, 시장은 갈수록 더 치열해지지만, 그래도 벌어놓은 현금도 많고, 자본이 많이 필요한 산업이 아니고, 여전히 사이즈가 작은 편이고, 언젠가는 괜찮은 게임을 내기는 할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윤여정 쌤이 재재의 문명특급에 나와서 이대로라면 나는 “괴물”이 될 것만 같아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미나리>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했다. 그 이야기가 아주 오랫동안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어떤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를 돌아봤다. 낮은 자존감, 과한 자의식. 두려움. 비겁함. 이기적인 마음. 나는 괴물이 될 바에야 기꺼이 '노바디(nobody)'가 되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했다.




일이 참 소중했다. 일 때문에 많이 울고 참 많이 웃었다. 서투른 부분들을 메우고, 단단한 부분을 더 뾰족하게 깎아내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왔다. 사람들이 성장에 대해 얘기하고 나는 으쓱한 기분을 느낀다. 사람들이 능력에 대해 얘기하고 나는 떳떳하단 사실에 긍지를 느낀다.  나름의 방점일까? 방점을 찍지 못한 자들은 슬퍼 마땅할까? 방점을 지나쳐 온자는 어디까지 또 나아가야할까?  




몇 달 전 자기 일을 소중히 여기고 무척 좋아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였고, 다른 일을 하게 되어서 자연스레 멀어졌지만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맑았던 청년이라 나는 놀랐고, 의아했고, 또 슬펐다.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어딘가에 올린 글을 보았다.일을 하기 위해서 오롯이 견디고 있지만 서울살이는 참 X 같다고 푸념을 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는 친구의 글도 읽었다.  




일이 너무너무 소중했던 너를 떠올리며 나에게 일이 별로 소중하지 않았단 걸 깨닫는다. 어쩌면 모든 것은 젊은 날의 환상, 인정하기 싫은 허영, 이루려는 마음조차도 먹지 않았던 해프닝.




늘 이렇게 +1 과 -1 을 오가다 결국엔 0이 되고 마는 시덥잖은 루프. 1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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