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 복귀, 팬데믹을 지내며
몸이 자주 아프기 시작한 건 작년 쯤이다. 온 몸에 염증이 돋았고, 소화기관은 제 기능을 전혀 못했으며, 이석증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눈도 못 뜰 편두통에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이런저런 병원들을 전전하다 신경정신과를 찾은 건 올해 초였다. 공항에 가면 소리와 냄새가 점점 더 선명해지더니 결국엔 호흡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면담과 검사를 마친 후 의사 선생님은 약을 처방해 주셨고, 새로운 환경을 최대한 피해야 하니 출장은 다 취소하라는 조언도 하셨다.
일단 미국 장기 출장 일정이 당장 다음주였어서, 상반기를 어떻게든 버텨본 뒤 여름 휴가 후에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병가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합리적인 계획이었지만 GG 선언은 생각보다 빨랐다. 미국에서 헬싱키로 떠난 출장 마지막 날, 번뜩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게 끝이었다. 병가를 냈고, 짐도 다 미국에 둔 채 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을 하면서 중간에 포기한 건 거의 처음이었어서 돌아오는 마음이 복잡했다.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고,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뭣보다 그냥 무척 속상했다. 패배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드는 기묘한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40일 정도의 병가 동안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면 습관처럼 운동을 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밥을 먹는 루틴의 반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아주 오랜만이었는데, 덕분인지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 4월 중순엔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 첫 주는 조금 떨렸다. 잘 쉬었으니 그만큼 더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겠다는 의지도 있었고,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전세계로 퍼진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출장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꼭두새벽부터 업무를 시작해도 미국 서부와의 시차를 커버하기엔 녹록치 않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은 어렵고, 프로젝트들은 늘어진다.
출장과 밤낮없는 컨퍼런스 콜로 정신을 못 차리던 작년과 비교해 보면 올해는 황당해서 웃음이 날 정도다. 전 세계의 업무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거기다 어느새 한 해의 반이 거의 지나갔고, 국제적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다. 의사 선생님 조언대로 집에만 박혀 일하게 된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렇게 느린 템포의 일하는 삶은 처음이라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나는 여기까지인걸까.' 라는 생각에 마음 고생을 제법 했다.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고 기분만 잡치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마다, 나는 억지로 한마디를 앞에 붙인다. '나는 여기까지'에서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로. 살다보면 최선을 다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오늘 마주한 나의 한계를 시니컬하게 넘기지도 말고, 호들갑 떨며 몰입하지도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고민하다 보면, 적어도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 보다 좀더 나아져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아진 나와 좋아진 날들이 만나는 그때는 또 얼마나 찬란할는지.
Slowly but surely, 오늘도 한 걸음 앞으로.
(기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