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도 일인가요?
업무에 대해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이 얘기를 빈번하게 듣는다.
"넌 주님 이잖아. 광.고.주.님."
네? 저요???? 제가요??
작업자로서의 능력이 제로인 내가 광고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광고주가 다 조현민 같은 건 아니에요 여러분... 광고주는 사실 어떤 직업의 역할을 설명해주는 용어는 아닌고로, 인하우스 마케터로서의 나는 어떤 고민과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쯤 글을 써보고 싶었다. 아직 경력이 대단하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게 맞을까 란 생각도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써놓고 한 5년 후에 또 읽어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과연??
2014년 여름부터 작년까지 나는 슈퍼셀 서울 오피스에서 슈퍼셀 게임들의 국내 마케팅(크리에이티브 및 캠페인 매니지먼트)을, 현재는 우리 회사의 대표 장수 타이틀인 <클래시 오브 클랜>의 글로벌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다. 하는 일의 범위나 물리적/정신적 모두... 함께 일하는 파트너 내/외부 모두....는 확실히 다르지만, 일단 매일매일 하는 업무의 기본적인 결은 비슷한 것 같다. 에이전시에서 일하시는 가까운 지인분들로부터 인하우스 마케터들은 도대체 뭘 하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설마 놀면서 월급 받겠습니까... 일단 내가 하는 일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모니터링: 일단 출근 하자마자 먼저 보는 건 데이터다. 가끔 밤새 온 이메일이 삼십개씩 있으면 이메일부터 친다.. 사실 나는 숫자랑 엄청 친한 마케터가 아니라서 다른 분들처럼 세세하게 뜯어보지는 못하고, 기본적인 트렌드를 점검하는 정도인데, SNS 페이지, DAU, Revenue, Retention, ARPDAU, Store Ranking가 기본적으로 챙겨보는 지표다, 캠페인 구상 중일 때에는 좀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살피기도 하는데 물론 데이터 닌자들이 도와줍니다. 데이터 뽑는 건 할 줄 모름 올해부턴 글로벌로 역할이 바뀌면서 시간이 예전보단 좀더 걸린다. 모니터링 중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땐 게임 및 마케팅 액티비티를 뜯어보며 원인을 찾아보는데,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트랙킹할 수 있다보니 다른 업계에 비해 봐야 할 데이터가 초큼 더 많을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2. 캠페인 기획/전략 수립: 모바일 게임 시장은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젊은 업계이다. 업계 종사자들도 상대적으로 젊은 게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업계의 역사 자체가 길지 않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장수 타이틀이라 캠페인을 기획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적지 않은 반면, 벤치마크 할 만한 케이스는 적다. 그러다 보니 결국엔 게임 개발자들/커뮤니티 매니저들/데이터 닌자들/나 저번 달까지 마케팅 나 혼자였음.... 모두와의 토론을 토대로 캠페인 기획(메세지 수립, 커뮤니케이션 채널 계획, 타겟, 예산, KPI 설정 등이 여기 포함됨)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마케터가 게임을 잘 모를 경우 대화가 안 된다는 점. 물론 랭커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대단한 게이머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 그래도 나쁠 거 1도 없어요, 적어도 어떤 요소가 어떤 플레이어들에게 어떻게 중요한 포인트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마케팅 하는 게임은 꾸준히 플레이 해야만 한다. 고로, 게임회사에 들어가시려면 그 회사 게임을 좋아하셔야 한다는 거..
3. 커뮤니케이션: 모바일 게임은 업계의 기본적인 스피드가 무시무시하게 빨라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미리 계획하기도 어렵고, 어렵게 계획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어그러지기도 하며, 어느날 갑자기 엄청나게 중요한 프로젝트가 말도 안되는 촉박한 타임라인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게임팀(헬싱키에 있음)/각국의 마케터(미국/한국/일본/중국)/커뮤니티 매니져(미국/헬싱키/한국/일본/중국)/파트너사(뉴욕/엘에이&샌프란/서울)들과 그때그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리고 이 모든 사항들은 빠지는 사람 없이 제 때 소통하는 게 중요한 만큼 어렵다. 거기다 미국/유럽/아시아 3대륙 시차& 매달 출장 콤보는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상당한 체력이 뒷밤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처럼 이메일 답장 안 하고 잠 잘 못 자고, 한식 챙겨먹는 부류의 닝겐들은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높을 수 있다.
4. 크리에이티브 작업/파트너사 협업: 위 3개에 비해 이 항목은 초큼 더 개인의 스킬 및 감각이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나 우리 회사 같은 경우 3D 애니메이션으로 광고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세계관 및 캐릭터 이해, 브랜드 톤앤매너 관리, 파트너사 선정 및 협업 등의 난이도가 높은 편. 다른 건 솔직히 몸으로 때울 수 있는데, 안되면 될때까지 야근하면 되지롱 크리 작업 만큼은 뭐 야근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어차피 야근 안 하면 안 나오지롱. 일단 모든 캠페인의 시작은 인하우스 마케터의 브리프이므로, 캠페인 킥오프 시 파트너사에게 목표와 메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캠페인이 산으로 갈 수 밖에 없고 아무리 브리프가 명명백백 완벽했했을지언정 그런 브리프가 있을까만은... , 모두의 이해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모든 이가 같은 페이지에 있는지 꾸준히 소통하며 체크야 한다. 올해는 이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하면서 한국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어요. 세종대왕 만세! 작업 진행 중 의견이 있을 땐 적절한 시기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대화가 너무 추상적일 때는 정성을 다해 레퍼런스를 찾아 파트너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작업을 하다보면 작업 자체에 매몰되기 쉽다 보니, 진행 과정 내내 소비자의 관점으로 작업물을 보는 눈은 어떻게든 구해와야만 한다. 나는 중간중간 작업물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 부분을 체크하는 편이다.
5. 캠페인 성과 분석 및 공유: 모든 캠페인이 내 자식 같은 마음이겠지만,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다. 객관적인 눈으로 이를 바라보고 분석하여 조직 및 파트너사에 공유하는 것은 캠페인 진행 만큼이나 중요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회사에 데이터 닌자들이 있으면 이 작업을 할 때 무척 도움이 되는데,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한다거나 정당화 하려는 노력 같은 건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다. 대부분의 긍정적인 성과는 사실 굳이 자랑을 안 해도 눈에 띄기 마련인데, 진행했던 캠페인을 통해 배웠던 부분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솔직하게 소통하는 게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생각할 필요 없는 빼박팩트인 게 마케터들은 결국 회사의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이들 중에 한 명이고, 그러다 보니 그러한 지출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공유하는 것은 의무이자 책임이다. 지금까지 일 하면서 '잘 됐을 땐 내 덕, 잘 안 됐을 때는 파트너사 탓'을 하는 분들을 아주 가끔 봤는데, 결국에 의사결정을 한 사람이 책임자라는 건 그 어떤 변명으로도 쉴드 칠 수 없다능.... 앞으로 인하우스 마케터들은 모두 하루에 세번씩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를 외치도록 하자.
사실 이 글은 6월 헬싱키 본사 출장 중에 쓴 글이다. 지금 다시 헬싱키에 와 있는 건 안 비밀... 당시 내가 처음으로 리딩한 글로벌 캠페인이 런칭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잘 된 부분들도 있고, 마음 먹은 것 처럼 잘 안되서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난 사실 기억력이 거의 붕어 수준이라 회사에 누가 안 되는 선에서 까먹기 전에 후딱 써놔야지 하는 마음으로 적다보니 읽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실무적인 얘기보단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어요 징징대다 말고 그래도 잘 해봅시다! 정도의 다짐이 전부인 것 같아 좀 민망하네.
뭐 그래도 캠페인은 성공적이었으니, 내 5개월 간의 낮과 밤을 다 갈아바친 애니메이션을 공유하며 흥기롭게 마무리해야겠다. 잘가라 해머잼! 그동안 행복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fFkVPbckk
커몬빌더 해머잼 해머해머해머잼 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해머재재ㅐㅐㅐㅐ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