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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르 Jun 05. 2020

어깨 으쓱!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도시락

Part1. 어머니와 나의 음식 이야기

 날이 좋아지면 어린이들의 소풍 시즌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올해는 학교를 가지 못했으니 봄소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겠지만, 가을에는 다시 소풍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소풍날처럼 즐거운 날이 또 있을까? 소풍이 있는 날에는 수업이 없다. 수업이 없으면 숙제도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를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가 바로 소풍날이 아녔던가 싶다.


소풍 (逍風) :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로 나갔다 오는 길


 소풍 날짜가 잡히면 가장 고대했던 것이 무엇일까?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타고 가는지? 누구와 짝꿍이 되는지? 내가 고대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도시락이었다. 누가 뭐래도 점심시간은 소풍의 하이라이트였다. 급식이 아닌 새로운 음식들을 삼삼오오 모여서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는 급식 세대였기 때문에 도시락에서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평상시에도 다양한 음식들을 접할 수 있는 지금도 소풍의 하이라이트가 도시락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요즘 엄마들은 어찌나 부지런하고 손재주들이 좋은지 도시락들이 도시락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도시락에 곰돌이도 있고, 토끼도 있고, 병아리, 문어도 있다. 언제부터 도시락이 동물농장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화려한 색을 입힌 반찬들부터 여러표정을 짓고 있는 캐릭터 도시락까지! 어머니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 무대가 된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때 도시락은 김밥과 유부초밥이 다였는데, 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한 것 같다.


 나는 김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나에게 김밥은 뭔가 여러 가지 반찬들이 섞여있는 오묘한 음식이라고 느껴졌던 듯하다.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김밥을 즐겨먹진 않는다. 소풍 때 다른 엄마들은 김X천국이나 김 X네 같은 곳에서 김밥을 맞춰서 보내기도 했는데, 우리 엄마는 까탈스러운 딸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침잠이 많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적어진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여전히 잠이 많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일찍 일어나는 날이 소풍날이었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양파, 파, 당근, 호박을 다지고 볶는다. 다진 소고기에 간장, 설탕, 깨소금과 같은 갖은양념을 해서 볶은 다음 밥과 볶은 채소, 고기를 고루 섞어서 둥글둥글하게 빚는다. 이렇게 빚은 주먹밥을 다시 계란물을 입혀 색을 내어준다. 샛노란 주먹밥을 열에 맞춰 가지런히 넣어주면, 손 많이 가는 딸내미 도시락 완성된다.


 내가 소풍 당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건 날씨가 어떤지 확인하는 일! 날씨가 좋은 걸 확인하면 안심하고 도시락을 싸고 남은 주먹밥 먹었다. 엄마가 계란을 입히다가 실패한 주먹밥들은 고스란히 나와 동생의 아침식사가 되었다. 식탁에서 주먹밥 하나 먹고 서로 마주 보며 씨익하고 웃고 장난치다가 또 주먹밥 하나 먹고 투닥거린다. 그리고 그 투닥거림이 싸움이 되면 엄마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도시락을 준비한 엄마에게 우리 남매의 싸움은 버거웠으리라... 이 글은 쓰며 엄마에게 미안한 맘이 슬며시 올라왔다.


 한입에 쏘옥 들어가는 동글동글한 주먹밥이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내 도시락 가방 속에서 둥글둥글 돌아다닌다. 고대하고 기다렸던 점심시간이 되면 너도나도 도시락 뚜껑을 연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리고 샛노란 주먹밥이 눈을 사로잡는다. 친구들이 "와~" 하는 탄성은 덤! 지금이야 그냥 계란을 입힌 소고기 주먹밥이겠지만, 그 당시에 흔치 않았다. 뭐든지 보통 수준을 유지하는 내가 으쓱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젓가락이 오가고 대화가 이어지는 그 왁자지껄 시끌벅적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따뜻한 그 시간이 그립다.



 소풍이 필요한 오늘,
당신의 머리에 스치는 도시락은?


설레는 소풍, 그리고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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