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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tal clear Nov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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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하나가 잘 끝났다. 과연 얼마나 잠을 잘 잘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아직 붓기가 있고 피+코딱지 등 상흔이 남아있는 코 내부일텐데도.. 콧구멍이 크게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해보지 못한 진귀한 경험이다. 이건 내 어릴때부터 서서히 형성되온 몸의 일부다. 이 코 때문에 난 입으로 숨쉬는 잠을 잤고 그 결과 얕은 잠을 자서 아침마다 낮마다 힘들어 했다. 사실 체력 자체는 좋은 편인데도 (예를 들어 밖에서 등산이나, 발동걸려서 야근 등은 잘함)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고, 병원을 다녀 본 결과 이건 수술이 필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술 후에 재발이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판단도 들었다.혼자 결정 내리고 하게 된 수술은 - 수술 자체는 매우 아팠다. 그날도 매우 아팠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가서 패킹했던 것들을 빼내고 나니, 내 콧속에 공기가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너무 신기했다. 이 작은 녀석이 또 안에 뭐가 가득차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쌍한 내코.. 심지어 어릴때는 높은데서 박은 적도 있다.


살다보니 이것저것 하나씩 고장나 고치기도 하고, 아니 내 코처럼 원래부터 문제 있었던 것들을 품어 주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같다. 100% 완벽한 건강과 100% 완벽한 컨디션이 나를 기다려주는 건 아니다. 그렇게 몸을 가꾸며 사는 트레이너도 도수치료 받고, 다쳐서 정형외과 다니고.. 다 그러더라. 세상일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내 몸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게 요즘의 깨달음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대펀이 되지 못하면 짐싸서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고 또 언제까지 좋은 딜을 소싱해야할까 라는 압박감도 들고. 


확실한건 이 직업을 시작한 후에 나는 어릴때의 나로 많이 돌아왔다. 아줌마 몇 층 사세요? 하던 호기심, 친화력 / 아줌마 아드님이 저 오늘 때렸어요 하던 오지랖 / 롯데월드에서 수백명 앞에서 춤을 추던 관종끼.. 이런게 사실 어릴때부터 나를 이루던 요소였는데 어느 새 환경이 그렇지 않다보니 눌러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강박관념도 없고, 이제 한은 나온 김에 한 직업에 뼈를 묻겠다는 직업의식도 없고, 또한 인간은 서로를 해하는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좋은 노래가 들리면 따라 부르고, 자리가 좀 넓으면 춤을 추고, 좋은 생각이 나면 알리고 표현하고, 웃긴 말이 생각나면 그자리에서 말하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돌아다니면서 나눠주고. 때로는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군집해서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알을 듣다가도 특이한 포인트에서 질문이 생겨서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런데 이렇게 나서는 것,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 친화력을 부리는 것, 오지랖을 부리는 것, 관심 받기 좋아하는 것 등이 이 업계에서는 절대 -가 아닌 성질이 된다. 그래서 조금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한은에서는 한 마디 하기 위해 10번의 사고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서는 대부분 기껏해야 한두번 생각하고 뱉고, 또 워낙 말이 많은 업계라 뱉고 또 잊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내가 뿌려놓고 물을 준 인간관계에서 소중한 열매를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진심으로 (인격적으로) 좋아하며서도, 진심으로 존경하는 (능력) 사람들과 계속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 가면서, 좋은 기회가 닿았을 때 투자와 연결시켜서 서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성취를 해보고 싶다.


오늘은 그래서 이렇게 내 밖의 세계에만 관심을 돌리고 있는 나에게,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수술 얘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평생 나에게 하지 못한 말로 글을 끝내고 싶다. "현정아 수술 받으라 수고 했어. 좋은 결정 한거야. 용기 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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