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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Aug 08. 2017

[19] 해변의 보물섬

[19] Treasure Island Beach

다나 포인트에서 해안을 따라 10분 정도 북쪽으로 가다 보면 라구나 비치(Laguna Beach)를 접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라며 많이 들어는 왔지만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구나 비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내가 가본 해변 중에 제일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물론 매우 제한적인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내세우는 주장이긴 하지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메랄드 색의 바다는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일렁거린다.


여기 해변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여름 시즌 때면 해변 전체가 파라솔로 빽빽이 덮여있는 해운대 바닷가와는 달리, 이곳은 이곳만의 선선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모래 위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이나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한산해 보인다. 주중 오후라 그런 것일 수 도 있겠고, 메인으로 알려진 해변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난 더 좋다. 해변이 긴 라구나 비치에서 특정한 이 장소의 또 다른 명칭인 “Treasure Island”처럼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해변보다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조금만 길 따라 내려가면 눈앞엔 바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특징을 가진 해변을 몇 차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 사진 Selah


학부를 졸업하고 동부에서 서부로 “대이사”를 했던 그해 여름을 시작으로 홀로 몇 차례 해변을 찾은 적이 있다. 이사를 마치고 얼마 가지 않아 엄마가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나와 동생에게 집 뒤의 주차장에 차가 잘 있는지만 주기적으로 체크해달라고 당부하며 떠났던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두 번째의 사춘기와 같았던 20대 초반의 감성적인 그 시절, 서부라는 새로운 곳으로 오면서 그곳을 경험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동시에 한 번도 몰아보지 않은 엄마의 은색 차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운전도 서툴렀던 그 당시, 엄마에게 전화 너머로의 허락을 간신히 받자마자 차 열쇠를 서랍 어딘가에서 찾아 내 키보다 큰 차에 올라탔다. 전자제품과 거리가 먼 엄마의 차엔 업데이트가 되어있지 않은 내비게이션이 있었고,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했던 “산타모니카 해변(Santa Monica Beach)”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입력했다.


어린 시절,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난 바다가 지금까지 좋고 바다를 찾곤 한다. 엄마의 차로 첫 운전해서 간 곳도 바다였으며 그 이후로 서부에 1년 반 정도 살면서, 홀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종종 서부의 해변을 찾아갔다. 드넓은 바다 앞에 서면 너무도 작게 느껴지는 동시에 이러한 작은 나에게도 바다 같은 인생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격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렁이는 파도 앞에 자리를 잡고서 모래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최대한 편하게 앉으려고 한 뒤 랩탑을 켜고선 할 수 있다면 글을 썼다. 빛을 운반하는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해변의 갈매기들이 크지 않은 움직임으로 모래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 가끔 내가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면 움찔하곤 했던 나의 감정 상태를 기억한다. 그러다가 다시 파도를 바라보고, 철썩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는 있지만 마치 그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강하고 신비로운 파도를 경험하곤 했다. 오롯이 나와 바다 그 이상에 집중할 수 있었던 순간. 저 파도 너머로 빛이 모여져 눈부시게 반짝이는 천국의 문을 본 것 같았던 시간들.


아름다운 라구나 비치 앞에 엄마와 서서 보노라니,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뇌리에 기분 좋게 몸을 흔들어 댄다. 사랑스러운 이곳을 하루 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엄마, 내일 책 한 권씩 들고 다시 방문하는 게 어떻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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