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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Jun 26. 2017

[18] 정원이란

[18] A Garden Is

"어느 날 아침 나는 책 한 권과 빵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은 채, 집을 나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어린 시절에 늘 했던 대로 집 뒤에 있는 정원에 먼저 들렀는데, 그곳엔 아직 그늘이 져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주 어리고 막대기처럼 얇은 상태였던 아버지가 심은 전나무들이 우람하게 자라 높이 서 있었고, 나무 아래에는 밝은 갈색의 뾰족한 잎사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는 몇 년 전부터 뾰족한 잎사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는 몇 년 전부터 상록수 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길고 좁다란 꽃밭에 어머니가 심은 다년생 꽃들이 피어 있었는데, 이 꽃들은 풍성하게 화사한 빛을 뿜었고, 일요일이면 이 꽃들로 커다란 꽃다발이 만들어졌다. 거기엔 조그만 주홍색 꽃송이들이 다발을 이룬 식물이 있었다. 그 이름은 불타는 사랑이었고, 여린 줄기에 매달린 심장 모양의 붉고 하얀 꽃들이 피어있는 부드러운 다년 생 식물은 여인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에 관하여,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중"




글, 사진 Selah


내가 아주 어릴 적, 우리 집 앞에는 아담한 정원이 있었다. 다채로운 색의 꽃들이 풀들 사이에서 사이좋게 몸을 흔들고 있었고, 가을이 되면 단감을 낳는 크지 않은 키의 나무가 있었다. 그 사이로 몇 발 자국만 걸어가면 밖으로 잇게 하는 문이 있었다.


나는 한여름엔 그늘을 만들 줄 아는 그 소박한 장소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정원 한가운데서 장난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유모차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선 다문 입술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이 있다. 머리는 자연스레 베이비펌이 되어 있으면서 걸크러쉬를 연상케 하듯 짧고, 상의는 얇디얇은 소매 없는 것으로 입혀져 있다. 또 다른 사진에도 내 모습은 별다른 바 없으며 대신 상의에만 무얼 먹다가 흘렸는지 얼룩져 있는 옷을 입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위아래 세트로 보이는 개나리색 츄리닝을 입고 있는 작은 고모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사진, 엄마 품 안에서 내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는 사진, 앉아 있는 유모차 뒤로 서있는 할머니와 찍은 사진. 통통하고 짧은 엄지와 검지로 잡은 싱그러운 색의 왕포도를 보며 호기심을 발사하는 눈이 사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  


초록 잎들 사이에서 신나게 볼을 비벼댔으리라.


그 시절 우리는 아담한 주택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작은고모를 포함해 여섯 가족이 살았는데, 친척들이 자주 놀러 왔던 것 같다. 집 앞 정원뿐 아니라 집 안에서 찍힌 사진들도 꽤 많은데 그 사진들 안에는 대부분 친척들이 찍혀있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9개월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사촌 언니와 함께 나무계단에 앉아 언니에게 찡그린 눈웃음과 함께 애교를 부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비단 개월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 9개월의 차이가 분명할 정도로 나보단 언니가 더 몸집이 더 크다. 또 다른 사진엔, 아빠와 작은아빠가 안짱다리를 하고 앉아서 방 안에 놓인 작은 그네를 타고 있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진도 있다.




북적북적했던 환경이 내 기억에 기분 좋게 남아 있는 것인지 나는 한 지붕 아래 친척들과 함께 모여 사는 걸 늘 그려왔다. 집 앞엔 어렸을 때처럼 꽃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정원이 있고 밥 먹을 시간이면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들을 시끌벅적이며 나누기도 하고. 일을 하러 집을 나설 때면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고 격려도 해주면서. 만약 가을이라면, 주말엔 다 같이 몇 안 되는 감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여유도 함께 누리면 좋을 텐데. 참 좋을 것 같은데.


정원.


그래서 그 단어를 듣기만 하여도 조용한 가운데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보다는 살랑이는 잎들 아래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대화의 소리가 떠오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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