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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Feb 11. 2017

[17] 이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17] My Small Story About Name

한글 이름을 보자면, 엄마와 난 성을 제외한 이름의 첫 자, “진”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 일반적인 사실이 놀랍게도, 미국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들곤 했다. 이건 순전히 미국으로 처음 들어올 때 만들었던 여권에 쓰인 철자 때문이다. 엄마의 순수 번역기를 따라 “진아”가 “Jina”가 아닌 “Jin A”로 번역된 것이다. 그 결과, 나의 “Jin A”의 “A”는 그 뒤에 마침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들네임 이니셜로 받아들여졌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마도 대부분일 것 같다는 온전한 나만의 판단 아래) 미들 네임을 지니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 테다. 훗날 두 단어 사이의 공간을 공식적으로 없애기 전까지, 학교의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은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신중하게 확인한 이후에 “Jin?”하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곤 하셨다. 드물었지만 가끔은, “Jin Ay (“지네-이”)?”라고 불려진 적도 없잖아 있다.  


이런 내 구두로서의 “Jin”이라는 이름이 엄마의 이름이기도 했다. 엄마의 한글 이름의 두 번째 글자는 영어의 세 알파벳으로 대체할 수 있었고, 그 글자는 나의 “A” 보다 더 명백히 미들 네임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엄만 항상 “Jin”으로 불러졌다. 가끔은 병원 등의 공공장소에서 “Jin?”하며 이름이 호명될 때면 우리 둘은 그쪽으로 자연스레 머리를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는 어쩌다 보니 같아진 이름 덕분에 문제가 해결된 적도 종종 있었다. 핸드폰 요금에 관해서나, TV를 설치할 때, 또는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소에서 전화가 올 때나 보험사에서 연락이 올 때, 난 엄마인 척했다. “엄마가 영어가 불편해서 딸인 저와 대신 얘기해요,”라고 먼저 내 존재를 알리고 통화를 이어가곤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본인이 아니면 통화가 힘들다고 했던 적도 종종 생기게 되었다. 또한 내가 엄마 대신 통화를 하려면 그들의 부수적인 질문에 응하면서 까지 내 존재를 그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다소 불편한 절차를 겪기도 했다. 몇 차례의 사례 후에 난 전화상이나 인터넷상에서는 엄마가 되기로 결정했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우스운 생각에 올바른 영어 발음에서 최대한 멀어지게 들리도록 굴리거나 센 소리를 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이로울 때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그것에 대한 진실성이 부족했었을 수도 있다. 불편을 피하고자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상대방을 그렇게 속인 것인데 말이다. 갑작스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하려나. 여기 내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 전화상으로 엄마 대신 영어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엄마와 한참 동안 떨어져 살아서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신빙성을 붙일 때의 그 불편함을 한동안 겪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난 척하지 않으리라.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야 한다 할지라도 나는 나로 살리라. 내 한글 이름의 의미대로 참된 나로 살리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정직하게 질문에 답하겠다는데 표를 던지리라. 


2층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갈 준비를 벌써 다했나 보다. 


후딱후딱 준비를 할 줄 아는 비결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엄마. 

창문 너머로는 하늘의 법칙대로 이동하는 저 구름. 

쉴 새 없이 정확히 흐르는 시간. 


엄마는 엄마대로, 자연은 자연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나는 나대로.





글, 사진 Se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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