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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lah Feb 22. 2018

[20] 슬픈 이야기

[20] A Sad Piece

글, 사진 Selah


“돋보기를 끼고 보니 웬 원피스래? 이쁘다!”


30분 동안 한참 전화를 하고 나서 두어 시간이 지난 뒤 카톡 메시지가 왔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꾼지도 2주가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엄마의 시야에 사진이 들어왔나 보다. 흐릿한데 뭔가 새로워 보여서 안경을 써서 보니까 진짜 새로운 사진이었던 것이고 새로 보는 옷을 입고 있는 딸 사진에 흥분해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검정 바탕에 큰 꽃이 그려져 있는 원피스를 입고 엄마한테서 배운 포즈를 기억해서 다리를 겹친 다음 뜨거운 태양과 둥실한 구름 아래서 웃어 보였던 그때다.


이제 엄마에겐 돋보기안경을 써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전에는 부단한 노력 없이 보였던 것들이 안경을 집어 들어 눈에 갖다 대는 수고를 해야만 보인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은 자연스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돋보기안경만 쓰면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눈의 노화가 진행이 아주 많이 된 것은 아니라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것을 위아래로  거리를 좁혔다 늘였다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내 마음은 엄마의 눈처럼 흐려지고 먹먹해진다.


엄마와 대화를 할 때면 종종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쑤시다거나 통증이 느껴진다는 등 꼭 아프다는 얘기를 해왔던 엄마인지라, 아프다고 할 때마다 난 뭐가 그렇게 아프냐며 엄살이 왜 그리 심하나며 핀잔을 주곤 했다. 사실 엄마도 본인의 엄살스러운 면을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몸에도 변화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혼자 저 멀리 타지에서 살고 있는 엄마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요즘엔 엄마가 하는 얘기가 엄살보단 현실 쪽에 가깝게 들려 오늘처럼 이런 일을 겪으면 괜스레 슬퍼지고 만다.


어느 누구는 어린 시절의 부모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의 강한 모습이 계속 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것인지 그런 생각조차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당연히 늙는 것이고 나의 엄마 아빠도 당연할 것이다.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만에 엄마를 볼 때나 심지어는 한 달만에 보는 아빠에게서도 흰머리가 조금 더 보인다거나, 키가 작아 보인다거나, 나를 바라보는 눈가에 주름이 더 져서 그 시선이 언제부턴가 더 유순해진 양의 눈처럼 보인다거나, 가끔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머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마음이 반응하는 방향이 이렇게 다를 때가 있는 것이다.


거울 속에서 내 눈 주변으로 늘어난 선들과 목을 둘러 길이를 늘려가는 주름을 발견할 때보다, 그들의 변화의 모습의 속도가 훨씬 더 빠른 것 같이 느껴질 때.


아마 그런 시각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매일 시간을 먹으며 살아가는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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