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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Nov 16. 2023

이런, 이탈리아

이탈리아 여행 판타지가 있는 분들은 눈 감아요.

10월에 이탈리아로 2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로마, 토스카나,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이탈리아는 로마시대, 혹은 중세시대의 멋이 그대로 녹아든 나라이다. 그 말인즉슨, 현대인이라면 기대하는 편리함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의 시스템 (교통, 인터넷, 행정 등등)은 못 따라간다고 느끼는데, 특히 이탈리아에서 너무나 이를 체감했다. 


불편을 감내할 때 보이는 것들 in 로마


가장 아름다웠지만, 가장 불편한 곳은 피렌체였다. 그나마 로마에서는 우버를 불러도 잘 오고, 버스도 밤늦게 까지 많았는데, 피렌체에 도착한 첫날 배신감이 치솟았다. 우리의 숙소는 미켈란젤로 언덕 아래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문제는 피렌체 중앙역에서 숙소로 돌아갈 때였다. 오후 9시쯤 피렌체 국제공항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중앙역까지는 잘 왔다. 문제는... 중앙역에서 발생했다. 중앙역에서 가는 숙소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끝나버렸다... 분명히 구글에서는 버스가 아직 다닌다고 했는 데 있었는데 없어졌다. 다시 검색해 보니 20분 정도 떨어진 다른 정류장으로 가란다. 택시를 찾아보니... 세상에 15분 정도 가는데 5만 원이 넘는 비용(블랙우버)이 나온다. 피렌체 택시비가 사악하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비용도 비용이지만 문제는 택시가 없다. 택시를 잡으려면 보통 콜택시를 많이 이용한단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이동할 때는 기차를 탔는데 그땐 에어비앤비 주인한테 부탁해서 택시를 예약했다. 


아, 다시 숙소 돌아가는 이야기로... 아직 숙소에 도착하지 못했다. 열심히 정류소에 도착했는데 버스 전광판에 버스가 안 뜬다. 우리가 타야 할 건 23번이었는데, 전광판에는 불안하게 시리 저런 문구가 떴다. 번역기를 돌리니 다행히 끝났다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예상보다 늦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휴...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전광판

오 그래도 나름 디지털화가 되어있네. 실시간으로 알려주니...라는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전광판에 10분 뒤에 온다는 버스가 바로 눈앞에 와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신뢰가 조각났고 정확도가 떨어지는구나 싶어서 잘 보지 않았다. 차라리 전광판 옆에 있던 종이 시간표가 더 정확했다. 다행히 23번 버스도 도착해서 잘 타고 집에  가려나 싶었는데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서더니 경적을 계속 울리는 것이다. 

역시 이탈리아, 성질 한 번 급하네. 근데 뭔가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주차된 차 때문에 골목길로 진입이 어려워 보였다. 이 버스가 이 골목길을 간다고? 에 한 번 더 놀랬다. 경찰이 오긴 왔는데 그들도 주인을 찾는데 묘안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무전을 몇 번 주고받더니 사라졌다.

회색 차 때문에 지나갈 수 없던 버스.

우리도 10분 넘게 있다가 경찰도 어찌할 수 없는데 더 기다려봤자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다시 경찰이 오긴 했는데 어떻게 해결했나 너무 궁금하다. 그렇게 그라찌에 다리(감사의 다리)를 건너서 숙소에 도착하니 밤 11시였다...

그래도 내 원픽은 피렌체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밀라노에서 가르다 호수에 가기 위해 차를 빌렸다. 문제는 시동을 걸었는데 타이어에 경고등이 뜬 것이다. 다행히 남편이 자동차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짐작할 수 있는 제품 특성이었다. 혹시나 해서 직원한테 물어봤는데, 자기도 잘 모르니까 'What is your problem? what do you mean?'  이렇게 성질을 내는 게 아닌가. 남편이 여기 노란불이 켜져 있는 게 불안하다고 얘기하니까, 그렇게 불안하면 가다가 정비소에서 바람 체크하라고 하더라. 역시... 나는 남편에게 '이걸 쟤가 알겠어? 딱 봐도 모르게 생겼구만 그걸 뭐 하러 물어봐'라고 핀잔을 주었다.


차는 전자식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렌터카 회사는 아직 기계식에 멈춰져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다행히 경고등은 꺼졌다. 우리에게 혼란을 준 기능은 TPMS (Tire pressure monitoring system)이다. 타이어 압력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인데, 유럽차에 들어간 건 간접 시스템이라 처음에 시동을 걸면 노란불이 디폴트값으로 켜진단다. 설명은 들었으나 아무튼 그렇단다. 처음 타는 사람들은 놀랠 수 있다. 

아무튼 내가 겪은 이 사례는 앞으로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유럽에서는...

가르다 호수, 바다 아니고 호수

아직 피날레는 끝나지 않았다. 가르다 호수를 만끽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더랬다.

우리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네. 소매치기도 안 당하고 말이야....

운수 좋은 날의 복선은 복선도 아니었다. 렌트한 차를 돌려주기 전에 남편은 나를 먼저 숙소에 데려다주고, 혼자 기름을 다시 채우고 차를 반납하고 온다고 했다. 의리상 같이 갔어야 했는데 나도 체력이 떨어져서 못이기는 척 그러자고 하고 숙소에 먼저 돌아와 씻고 남편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불안 불안했는데 역시나... 남편의 다급한 연락 메시지가 도착했다. 

00야, 놀라지 말고 잘 들어. 오빠가 큰일을 당했어.

저 말 때문에 더 기절할 뻔했다. 혹시나 차 사고가 났나 싶었다. 알고 보니, 셀프 주유를 하고 돌아왔는데 차에 있는 모든 물건을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핸드폰과 체크카드는 두 손에 꼭 쥐고 차에서 내려 무사했다. 한국에서처럼 차문을 안 잠그고 주유를 하러 간 것이 화근이었다. 소매치기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1. 혼자 있는 순간 (항상 맞는 공식은 아니다) 2. 한국에서처럼 방심하는 순간


이탈리아의 주유소는 셀프 계산하는 곳이 주유하는 공간과 떨어져 있다. 또 주유소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고 한다. 자전거 탄 남자가 남편에게로 오더니 뭐라고 쏼라쏼라 하면서 정신없게 만들고 나서 왠지 차 문이 잠겨있나 열려 있나 확인했던 것 같단다. 차에 탔는데 그제야 짐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남편은 소리만 질렀다고 한다. 그와중에 정신 차리고 카드 정지하고 차 반납하고, 나한테 연락을 한 것이다. 다다음날 우린 출국인데 여권을 잃어버렸으니 그것이 가장 문제였는데 다행히 밀라노에 영사관이 있고, 여권 복사본을 갖고 있어서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비행기도 저녁 비행기라 그나마 안심이었다. 

저 날 하루 들었던 가방을 잃어버리기 5시간 전

문제는 남편의 상처받은 영혼이었다. 경찰서에 가서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하고 다시 그 주유소에 찾아갔다. 혹시 쓰레기통에 버렸을 까봐... 걔네가 거기다 버렸겠냐고 아무리 호소를 해도 가보지 않으면 자기는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애원했다. 그렇게 남편은 밤 11시에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도 저 가방 사진을 보면 시무룩해진다. 아 선글라스도 잃어버렸다. 다들 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진짜 우리가 당할지 정말 몰랐다. 


다다음날 수월하게 영사관에서 긴급 여권을 발급받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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