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3월 코로나로 세계가 이렇게 오래 멈출지 몰랐던 그날, 예약했던 비행기 티켓을 난생처음으로 취소했다. 바로 발리행 티켓을. 그리고 4년 뒤 드디어 발리로 출발했다. 그전 주만 해도 10월 태풍 때문에 또 결항되는 게 아닌지, 나와 발리는 원수를 졌는지 싶었는데 며칠 전 태풍이 소멸했고 무사히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우붓, 사누르, 꾸따였다. 하지만 발리에 돌아온다면 난 다시 우붓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붓에서는 여행이라기보다 '생활' 했기 때문이다. 생활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요가' 덕분이었다. 우리 부부는 요가에 빠져있기 때문에 우붓에서 가장 주로 할 일은 요가였다. 계획이라고는 바투르 화산에서 일출보기가 전부였다.
발리 여행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요가, 커피, 빈땅, 미고랭(나시고랭)
우리의 우붓 숙소는 차와 사람으로 늘 북적이는 메인 스트리트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의 한가운데였다. 새벽에 도착한 우리에게 숙소 위치를 찾는 것은 고역이었다. 도대체 나의 위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골목길이었다. 다음날 아침, 동네를 구경해 보니 우리의 여행에 너무나 적합한 장소였다. 여행이 아닌 생활에 가깝게 지내고 싶었던 우리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좁은 골목으로 출근하는 현지인의 오토바이가 줄을 이었지만, 매일 가도 질리지 않았던 카페, 일요일 저녁에도 핫했던 멕시칸 펍, 매일 출석했던 요가원까지 모든 장소가 걸어서 20분 내외 거리에 위치했다.
이번 여행의 키워드는 단순한 삶이었다. 어떤 요가 수업을 들을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 너무 더운 시간에는 숙소에서 무엇을 할지만 정하면 됐다. 단순한 일상을 즐기는 것이 왜 평소에는 하기 어려울까. 평소에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가치 있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회사에서도 오히려 바쁘다고 느끼면 하루 잘 지낸 것처럼 뿌듯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붕 뜬 시간이 많다고 느끼면 하루를 소모했다고 느낀다. 코로나가 창궐했던 20년 3월부터 20년 11월까지 일을 쉰 기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배워보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면 좋을까 응축해서 고민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소속된 조직이 없다 보니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을까 늘 아쉽기만 하다. 다시 나에게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이젠 마음껏 즐기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예행연습처럼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3일 연속으로 갔던 요가원은 채식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붓 요가원 중 가장 유명한 Yoga barn, Radiantly alive yoga인데,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싫기도 했고, 우리 숙소가 우붓 중심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요가원의 넓은 공간에 매트라는 나만의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동작을 하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다. 평소에 다니는 요가원은 최대 인원이 10명이기 때문에 평소에 느끼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요가는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발리 날씨로 낮 요가를 하는 중간중간 어질어질하기도 했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미소가 지어졌다. 밤 요가도 다녀왔다. 어두운 공간에서 명상하고 움직임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시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밤 요가하는 동안 모기에 가장 많이 물렸다...
요가에 빠지고 처음으로 해외에서 요가를 해보니 가장 좋은 점은 universal 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아사나(요가동작) 이름은 영어를 잘 몰라도 산스크리트어 동작 용어를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강사의 구령에 맞춰 모두 같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타다아사나
우타나아사나
아도무카 스바나사나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요가를 배운 지 2년에 가까워 오니, 일부러 외운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동작은 귀에 익고 빈야사 플로우는 어느 나라에서든 다 똑같으니까 어려움이 없다. 1시간 동안 집중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꿀맛 같은 '사바아사나'로 마무리한다. 사바아사나는 천장을 보고 누운 자세로 몸에 긴장을 풀면 된다. 사바아사나가 가장 달콤하게 느껴지는 날은 앞에 내가 얼마나 열심히 요가 동작을 수행했느냐에 따라 달려있었다.
여행도 나만의 사바아사나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생활했는지에 달려있다. 그래서일까 1년 동안 쉴 때는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행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무언가에 몰두해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의 사바아사나(여행)가 생각나지 않았다.
발리 여행을 하고 나서 그리고 발리를 다녀오고 나서 5개월이 지난 지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이젠 힘을 빼며 사바아사나의 순간을 자주 나에게 선물해보려고 한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고 내 인생의 사바아사나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