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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Jan 14. 2022

그림자를 볼 때 진실이 보인다

미하엘 엔데의 <보름달의 전설>

어느 달이 진짜인가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가 지은  짤막한 동화. 몽환적인 삽화와 어우러져 더욱 여운을 남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 당한 후 세상 성현들의 책을 탐독하며 진리를 추구하던 남자.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모든 책을 다 보고 마지막 글까지 접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책은 속이 빈 지푸라기라고. 이에 전율을 느낀 남자는 책을 버리고 광야로 떠나 숲에 이른다.

 숲에서 그는 계시를 듣는다. 이곳에 머물라, 내가 여기서 너를 만나고 싶으니라.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계시가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명상을 하고 마음을 비워간다. 그의 주변에는 온갖 짐승이 모여들고 평화로이 공존한다. 깨달은 현자가 된 듯한 그는 득도한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동굴에 은거하듯 지낸다.

 어느날 세상에서 온갖 죄를 저지른 거친 사내가 우연히 은자의 앞에 나타난다. 그는 은자를 치려했으나 어쩐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은자는 자기 앞에서 잠이 든 사내를 보고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겠노라 결심한다. 사내는 은자에게서 평안을 느끼고 자기를 위해 지혜의 말을 해주는 것에 감동하여 그의 곁에 머문다. 세속의 습관을 벗지 못한 사내는 은자에게 훔친 것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그때마다 은자는 사내를 바른 길로 이끄는 말들을 해준다.


 어느날 은자는 보름달이 뜰 때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주문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 분이 은자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반성하고 변하지 못하는 사내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사내는 몰래 이를 지켜본다. 은자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심이 들어서다. 얼마 전부터 평화로이 지내던 짐승들이 사라졌고, 은자 곁에서 매가 토끼를 잡았다.

사내는 보름달이 뜬 날 성스러운 천사와 그리폰이 자기 눈에도 보이는 것을 깨닫고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화살을 쏜다. 은자는 화를 냈고 사내는 핏자국을 따라가 확인을 해보자고 한다. 화살에 맞은 것은 삿된 정령이 들어가 사람을 홀리는 오소리였다. 은자는 탄식하며 어찌 알았냐고 묻는다.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기같은 이에게도 보일 정도면 가짜 아니겠냐고 한다. 은자는 부끄러워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너에게 배워야겠다고 한다.




깨달음은 혼자 책 본다고 되는게 아니라거나, 교류를 통해서 해야한다는 식의 감상도 있더라. 세상과 부대끼지 않고 나홀로 머리만 채우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허상이라는 메세지로 흔히 다가가는 듯 하다.


은자와 사내는 대조적이다. 고차의 정신 세계를 추구한 은자와 거칠고 악한 행위만을 해온 사내는 대극에 있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의 관계와도 같다. 한쪽이 의식적으로 진리, 선 등을 추구하는 면이라면 다른쪽은 그 지향으로 인해 쌓인 그림자 에너지다. 그림자는 자기를 알아봐주는 의식에 의해 계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식이 빠지는 함정을 알아본 것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언제나 균형을 잡기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 의식이 뭔가를 강하게 추구할수록 다른쪽의 그림자 에너지는 그만큼 짙어진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무의식이 작용해서 현실을 뒤엎을 때(활을 쏠 때) 비로소 진짜가 드러난다.


"네가 알고 추구하던 그거, 아니야."


은자는 그림자에게서 배워야함을 깨닫는다. 내가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에 집착할수록 진리에서 멀어지고 환상을 좇게되는 이치를, 미하엘 엔데는 알았던 것 같다. 언제나 좋기만 하고, 옳고, 지향해야만 하는 무언가는 없다. 이상적인 정답도 없다. 사랑을 추구한다 해서 미움이나 시기, 질투, 두려움 같은 사랑이 없는 상태를 배제하는 것은 허상과 짝짜궁하러 가는 지름길이다. 자기를 사랑한다면서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 또한 가짜 가브리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졸렬한 나, 진짜 허술하고 악하기도 하고 찌질한 나, 내가 보기 싫은 나, 저 뒤로 미뤄놓고 내가 아니라 내가 극복해야하는 면이라 포장하는 그 진짜 나까지도 받아들이고 작고 겸허한 존재로서 서있을 때 가짜 가브리엘을 알아볼 수 있다.


 미하엘 엔데는 합리주의에 반하는 직관적인 세계의 힘을 믿었다. 합리주의가 찬양하는 이성이 도덕적 가치를 잃고 오로지 외적 성장이나 양적 팽창만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어 인간소외, 생태계 파괴 등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은자는 팽창하는 자아, 이성이고 사내는 야성이 살아 있는 직관의 힘이다. 융의 관점에서 본다면 의식과 그림자다.


 내가 무언가를 추구하고 이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을 때, 그것이 영적인 이끌림이나 깨달음이고 진리이자 직관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그림자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내 환영을 깰 화살을 날릴 무의식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실 무의식은 언제나 내게 작은 활을 계속 쏘고 있다. 꿈을 통해, 울컥하는 감정을 통해,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행동을 통해.


 대부분, 현재 내가 좇고 있는 것은 환영이다. 이를 알아보면서 쏴죽일 건 죽여가며 더듬더듬 길을 가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여담.

미하엘 엔데는 화폐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없어지게 만들어서 소비하도록 해야(1000원을 오래 갖고 있으면 500원이 됨) 본연의 가치대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돈이 가진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루돌프 슈타이너도 '노화하여 없어지는 돈'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 모두 돈의 악마적 속성을 알고 있었다. 난 사람들은 다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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