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몸이 유연하다는 것

몸을 보며 마음을 생각하다

by 율마

몸이 유연하다고 하면 나는 다리도 잘 찢고 관절 가동 범위가 넓어 몸이 잘 휘면서도 근육이 땡기지 않는 것을 떠올리곤 했다. 실제로 '허용 가능한 범위가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몸의 연결이 군데군데 깨진 사람들 중에는 유연함의 대명사일 요가나 필라테스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게 뭘까 싶었다.


기능적으로 몸을 쓰고 훈련해서 가동 범위를 넓히는 것과, 몸이 부드러워지면서 가동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발레나 기타 유연한 동작을 연마하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이건 해야해'라는 생각으로 몸을 쓰는 것과,

몸이 자기가 편한 범위를 찾도록 감각을 탐색하며 뇌가 인지하고, '살짝 긴장되는 정도에서, 하지만 고통이 아닌 정도에서 조금 더 경계 너머를 기웃거리고 어떤지 느껴볼까'하는 것.

이 두 방식이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후자는 몸도 유연하게 하면서 동시에 생각도 유연하게 할 것 같다. 평소의 내 태도나 관점 또한 유연해질 것이다.


나의 몸이 자극을 처리하는 과정이 안전하고 유연했기에 그 프로세스가 뇌회로에 새겨진다. 한 번 안전한 길을 가봤다면 불편하고 아픈 길을 굳이 선택하지도 않고, 그런 길을 만나면 알아보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의 준비를 '알아차리는 상태'로 할 수 있게 된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뇌가 어떻게 몸을 경험하느냐는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일에도 영향을 준다.


아기는 몸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아이들은 몸을 쓰며, 즉 감각하며 자기 자신을 그려낸다. 인간은 감각하며 세상을 경험하고 사고하여 이를 해석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일상의 복잡한 상황들을 뇌신경학적으로 풀어보면 결국은 자극-무의식의 자동 반응 혹은 자극-사고와 해석-반응이다. 자극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를 다루는 것이 사고를 다루기 전 단계에 있다.


나는 유연하게 사고하길 선택함으로써 삶도 유연하게 살고 싶다. 내 가족들도 그러길 바란다. 유연할 때 일상의 기쁨이나 흥미로운 일들이 더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교적이 된다거나 성취를 해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 하다. 대충 내깔려두고 안락함만 좇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는 일들을 지켜보지만, 내가 기꺼이 감내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능동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오늘 필라테스를 하다가,



'오늘따라 몸이 잘 연결되어 있으세요. 좋은 일 있으세요?'

라는 말을 들었다. 잠이 모자라 신체 컨디션이 더 안 좋은데, 몸은 더 유연하게 서로 연결되어 움직였다.


아, 능숙하게 어려운 동작을 하는게 꼭 '유연'한 것은 아니었지. 새삼 느꼈다. 최근에 내게 유연하게 흐름을 타보기로 결정한 일이 생기고 있고 에너지도 바뀌고 있다.


나는 몸을 유연한 방식으로 재경험한 일이, 외부의 상황이나 사건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근육이 긴장되어 있어도(안 그런 현대인이 어딨는가!) 이를 느끼고 다룰 수 있으면 된게 아닐까. 부드럽고 편안한 상태를 목표 삼는 마음이 옅어지니 역설적으로 부드럽고 괜찮다고 느끼는 범위가 넓어지는게다.

계속, 나의 뇌가 나의 몸을 재경험하도록 돌봐야겠다. 현재의 뻣뻣한 상태를 돌아보고 조금씩 경계를 탐색해가며 안전하게 몸을 움직이도록 할 때, 내 사고도 부드럽게 확장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인상적이어서 기록해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심리적 유연성이 치유의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