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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Aug 31. 2018

정신병

수면을 넘나들며.

병들어 지내는 동안 나는 내가 시시각각 멍청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릴없이 마음 속으로 깊이 가라앉는 동안, 나는 수없이 나를 대면해야 했다. 때로는 미워하고, 때로는 증오하고,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아껴보기도 하면서 나는 계

속 끝없는 바닥을 찾아 가라앉고 있었다. 활자들은 머릿속에서 해체되어, 거대한 타성의 물결 위에서 반복적이고 의미없는 울림만을 찰박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낯설게 보는 일이 더이상 불가능하고, 붙잡거나 발디딜 틈이 없는 질척한 내적 공간 속에서 나는 열심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래 약을 먹고,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자주 찾아오던 절망이나 우울, 불안들이 불현듯 찾아오는 수준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나는 그제서야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약을 먹는 동안에도 문제는 많았다. 약을 먹는 동안, 늘 나를 깍아 내리던 나의 시선마저 그동안 마비되어 있었다. 약은 나를 아프지 않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아있지 않게도 했다. 모든 욕망이 거세되고, 오직 식탐을 부리는 동안에만 나는 존재하고 있었다. 체중이 불고, 몸이 망가지고, 생활이 무너졌다.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에 나는 내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증오하고 있었다. 근본 없고 필요 없는 고통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서? 오래 약을 먹은 덕분에 요즘은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일주일, 이주일, 혹은 삼일 단위로 몸의 컨디션이 무너지는 와중에, 오랜만에 정신이 돌아왔다. 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내가 전과 같을 수 없음은 당연해보였다.
이제 더이상 예전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나,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무언가를 즐기는 것,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 배우고 익히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그렇다. 당연한 모든 것들이 내 내적 세계에서 산산히 깨어졌다. 타성이라도 무너졌다면 즐거운 일이었겠지만, 이것은 불능에 가까운 것이다.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을 수 없기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내게 동음이의어의 사용과 같았다. 관습적인, 아주 관습적이라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고 있을 일들이 내게 어떠한 기쁨도 주지 못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한 때 나는 욕망의 거세를 희망했으나, 그것의 실재는 정말이지 내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서는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삶이 거기 있었다. 끔찍했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냥 불빛이 비춰내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 맛있는 음식의 모습, 따뜻한 벽난로의 모습처럼, 나는 그저 한 때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것만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반추하는 소처럼, 지나간 사랑을 환기하는 사람처럼. 
지금은 영원히 깨지 않는 잠속을 걸어다니는 것 같다. 나는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둥둥 떠다닌다. 일상이 다시 찾아오고, 나는 닿지도 않는 손을 들어 집안일을 하려든다. 그런 와중에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은 내 자신이 대견하긴 했다. 대견하다? 아무튼. 그렇다. 요즘은. 개강하면 상담 치료를 시작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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