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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Mar 23. 2019

2018.03.23 일기

할머니 생각.

집에서 혼자 술마시면서 할머니 생각을 하면서 궁상을 떤다. 할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지윤이가 돈 버는 거 보고 죽어야지,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우리 친가쪽 사람들은 대체로 명줄이 길다고, 그런 얘기도 하셨다. 뒤에 치매가 오신 할머니는, 초기에도 내게 생활비를 아껴 용돈을 남겨 주셨고, 병원에 입원해 정신이 온전하지 않는 동안에도 나를 찾으셨다. 
나는 가장 조그맣고 귀여울 때,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고, 할머니의 말투를 배웠고,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할머니는 절에 가서도, 교회에 가서도, 성당에 가서도 내 자랑을 했고, 매번 툴툴 거리고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끊어라고 하면서도 내가 어쩌다 전화 한 번을 하지 않을까 기다리던 분이셨다. 할머니는 2층 계단에서 구르고도 다치지 않았다며, 자랑을 하셨지만 결국 손주가 돈 버는 걸 보기 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매양 그렇게 짝사랑만 하다가 떠나셨다. 
다섯살 쯤 할머니하고 지내던 시절의 기억들이 내겐 아직 많이 남아있다. 골목길을 뛰어나가다 넘어진 나를 할머니가 놀리셨고, 나는 화가 나서 할머니 무릎을 이빨로 깨물었다. 당연히 내 이가 아팠고, 할머니는 심보 고얀 놈이 벌 받는다고 껄껄 웃으셨다. 할머니는 늘 요구르트를 밥솥에 데워다가 내게 주셨고, 찐한 된장국을 밥솥에 데워 기가 막히게 끓이시곤 하셨다. 그런 된장에 밥을 비벼먹으며, 마침 TV에 나오던 말 샤브샤브 고기를 보며, 할머니는 샤브샤브가 다 무슨 소용이냐, 이 된장에 제일 맛있다고 하셨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순간들. 천진난만한 나와 나를 무척이도 아끼셨던 할머니가 있던 순간들. 그냥 생각이 났을 뿐인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오랜만에 또 울적해졌다. 
운구 하기 전 마지막으로 뵀던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도 작고, 말라서. 나는 할머니, 저 돈 버는 거 보고 돌아가실 거라면서요, 하고 펑펑 울었다. 그런 날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아직도 할머니가 보내주신 간장이 남아있다. 칠성 사이다 1.5 리터 병에 들어있는 간장. 기숙사에 들어가고, 이사를 세 번하는 동안에도 다 먹지 못한 간장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한다고 하니까 할머니는 간장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 마음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진다. 나는 이제 그 간장이 너무 아까워서 먹지도 못 하고, 버리지도 못 하고. 간장이 혹여 상했을까봐, 더 상할까봐 그 뚜껑도 열지 못한다. 그런 기분.
오늘은 할머니 생각을 하며, 마저 궁상을 떨다가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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