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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Mar 25. 2019

욕망에 대해서.

보일러나 전기장판이나.

방이 춥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이불 도둑이었다고. 귀엽고 재밌는 얘기였지만, 순간 오한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뺐는 사람일까? 물어서 뭐해. 이미 이불은 훔쳤는데.


내 방이 추운 이유를 얘기하려면 생각보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아야 한다. 이 집에 내가 세를 들어서 살게 된 건 대략 1년 전쯤의 이야기다. 내 동생이랑 나이가 비슷한 건물에 공실이 났다. 오후 세 시. 불규칙한 잠에서 깨어 나는 이사갈 방을 찾고 있었다. 더이상 4평짜리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대학생 전세 임대 기간이 끝나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두 시에 올라온 매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결점도 없는 것 같았다. 직접 눈으로 방을 봤을 때도, 내 눈이 많이 낮아져 있었기 때문일까. 비가 샌 창문가나 요상한 흡연 부스 같은 화장실은 특별히 결점이 되지 않았다. 내게 그 방은 차라리 운명에 가까웠다. 이렇게 깔끔한 매물이? 그 건물은 사람이었다면 슬슬 고등학교에 갈 나이었고,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도 나는 다른 것들을 따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냥, 지금만 아니면 돼. 죽고 싶다는 얘기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인 것처럼.


그 건물에는 그 연식만큼 오래된 세탁기와 에어컨이 있었다. 창틀에 콕 박혀 있는 에어컨은 실외기 따위가 달린 최신식의 에어컨이 아니라, 15년 전 유행했던 스타일의 커다란 전자레인지 같이 일체형의 생긴 물건이었다. 잠시 만났던 옛날의 애인은 내 더운 방을 불평하기도 했다. 에어컨은 선풍기보다 나을 게 없는 물건이었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중고로 에어컨을 하나 들였다. 12년에 나온 모델이었고, 오징어 썩은 내가 났지만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집주인이 중고로 에어컨을 들일 것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정보력을 동원해 중고 에어컨과 사설 설치 업체를 알아보고, 그 옛날의 낡은 에어컨은 빈 자리를 남기게 되었다. 건물은 지을 때부터 그 에어컨과 함깨였고, 창틀에는 텅 빈 자리가 생겼다. 그마저도 집주인은 특별히 비용을 들이려 하지 않아서, 나는 그 구식 에어컨이 난 자리를 직접 아크릴 판으로 메꿨다. 여름이 오고, 장마를 겪는 동안 그 아크릴 판은 실리콘과 양면 테이프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나갔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창문을 덮는 에어캔 마개를 하나 샀다. 두 시간 정도 끙끙거린 끝에 창틀을 모두 덮는 커다란 덮개가 설치됐고, 나는 그렇게 혹독한 서울의 겨울을 또 한 번 보냈다. 다만 그 덮개라는 것이 지퍼가 너무 연약해서 몇 번 여닫지도 않았는데 지퍼가 고장나버렸다. 마침 봄이 오고 있었고, 나는 그냥 그 자리를 내버려 뒀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하니까, 차라리 찬 공기가 드나드는, 덕지덕지 찌꺼기가 붙은 창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으니까. 


봄이 오고 있다. 나는 그 창틀에 붙은 에어캡 덮개를 뜯어내야 하고, 다시 아크릴 판을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울고 싶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면 모두 깔끔히 해결될 일들을 눈앞에 두고, 나는 무기력이나 피로감을 느껴야 했고, 그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모기에 덜 물리는 한 해를 위해서라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면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 사소한 욕심. 덩어리진 욕심이 나는 증오스러웠지만, 부러 표내지는 않았다. 중고 에어컨도 비싸다는 얘기를 집주인께 전하며, 나는 에어컨 청소 비용이나 받아 보려 했지만 그 사람은 늙은 자기도 중고 에어컨을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 그랬다. 내 비염이나 썩은 오징어 냄새는 그 사람께 너무나도 먼 별나라 이야기었다. 나는 굽히고, 수긍하고, 돌아서서 나오려 했고, 그 집주인은 내게 인물이 좋다는 둥 딴소리를 했다. 씨발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도 숭숭 바람이 드는 방에 앉아서 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불 도둑이 된 사유를. 어딘가에 제출하기에는 너무 가엽고 모자란 이야기를. 그래, 그래도 괜찮아. 나는 차라리 그런 욕심을 긍정할 생각이다. 나도 욕심이 좋고 욕망이 좋다. 당신과 같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나는 언제나 욕망의 피사체가 되길 바라며 지냈다. 속 좋은 얘기다.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하는 그런 권력의 성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욕망을 목말라 했다. 누군가 나를 바라기를. 짐짓 아양과 귀여움에 속아 넘어가 내게 모든 것을 내려 놓기를. 나는 임신을 하지도 않았고, 성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런 온실 속에서 나는 기꺼이 욕망의 피사체가 되고 싶어했다. 돈이나 권력이나.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부러 집주인을 욕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너무 시쁘니까. 기름 뿐인 갈비탕을 욕하거나, 탁자 밑에 숨은 개를 원망하는 일이니까. 내 얼굴에 침 뱉는 일 같았으니까.


문제의 해결은 쉽다. 보일러를 더 떼거나, 전기 장판을 들이거나. 화석을 좀 더 태우고, 공기를 조금 더 더럽히고, 온갖 방법으로 갈취한 돈을 쓰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 시쁜 일이다. 이불 도둑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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