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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Mar 26. 2019

느리게 갱신되는.

나.

어느날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느리게 갱신되는데, 나를 모두 보여주고 나면 네가 떠날 것 같아 두렵다고.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문장이 참 좋네. 하고 대답을 했다.


스무살 이후로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 전까지의 세계에서, 나는 내가 이렇게 복잡하고, 가끔은 침울하고, 혹은 발랄한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가는 길에, 감상에 젖어서, 기억 속 처음 서울로 가는 장면을 회상하고 있었다. 나는 시야에 드는 모든 나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 안녕! 반면 스무살의 나는 커튼을 닫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다섯시간씩 걸리던 상경길은 어느새 세시간 반이면 충분하게 바뀌어 있었고, 차만 타면 졸음이 쏟아지는 사람으로 나는 변해 있었다. 그렇게 이제는 스물 다섯이 되었다.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는 내가 너무 답답했다. 사람들을 만나길 좋아하고, 푹 빠지고, 모든걸 내어 놓는 와중에 나는 그래서 늘 일말의 불안감과 함께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얕은 밑천이 금방이라도 동나서, 이 사람이 내게 실망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너무 느리게 갱신되는데. 그 사람은 내게서 떠나갔고, 또 다른 사람도 내게서 떠나갔고. 그랬다. 그 불안과 이별이 일대일대응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성정이 게으른 것 같다. 몰두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도 잘 안 두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몰두에 피곤을 느끼고, 새로이 책도 읽지 않고, 일 년 내내 새로이 들은 노래를 손에 꼽게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새로이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나는 또 어김없이 내 모든 것들을 던져버리곤 한다. 


상담 선생님은 내 연애사를 듣고, 조금 천천히라고 주문하셨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하기 참 어려운 주문이었다. 좋아하면 빠져들고, 사랑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내 모든 것들을 내보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사람인데, 천천히? 


방법은 있을텐데. 나를 느리게 내보이거나, 조금 침착하게 굴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게 밑천이 동나고서, 누군가 떠나고서도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배우지 못 한 것 같다.


그래도 미워하진 말아야지. 그 시간 동안, 느리게,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은 건 아니니까. 느리게라도 갱신되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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