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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Oct 03. 2020

두보나 이백같이

백석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이 먹고 싶어.


며칠 전 과외를 하다가 이 시를 봤다.




두보나 이백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언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아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레이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을 찾아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이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삘뺄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마침 추석인데 코로나로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한 상황이어서, 참 시의적절한 시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들  코로나로 겪어본 적 없는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코로나 블루" 같은 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행일지 불행일지, 코로나 이후에도  특별히 바뀐 것 없는 내 생활에는 코로나 블루가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이겠지. 늘상 우울하면서도, 새로이 우울함이 더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생활양식이 변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시련이  되지 않았을까. 지긋지긋한 시련.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뉴스를 보는데, 세계적인 불경기로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얘기였다. 뭐 불경기야 으레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라서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뉴스를 보다가 어머니한테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집은 원래 못 사니까 불경기가 와도 특별히 체감되지 않는다고. 나는  어머니께 제 딴에 재치있는 유머를 한 어린아이 특유의 표정을 지어보였을 것이다. 어머니도 하하호호, 그러네, 맞는 말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어머니가 가슴이 찢어졌을 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나만 기억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을 지도 모르겠다. 웃음으로 눈물닦기 같은 거창한 생각은 지금 나만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생활이 진창에 처박혀 있었기에 더 나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그런 불경기 같은 것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마련인데, 이미 집요하게 물리는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전을 부쳐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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