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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리 Jun 21. 2023

벼랑 끝에 서 본 적

에세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늘 평안하게 살아왔다 자부할 수 있는 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듯이 인생의 부침에서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소한 것에서 불면의 밤을 보낼 만큼 절실한 것까지 경우의 정도는 저마다이겠으나, 수십 년을 살아낸 이들에게 한 번쯤은 경각에 달하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이 역시 드물 것이다.     


최근 ‘자살’인가 ‘극단적 선택’인가에 대한 표현 논란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극심한 심적 또는 육체적 고통 속에 뒹굴며 한두 번쯤은 떠올려 봤을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스스로의 선택이냐, 아니면 사회적 타살이냐를 새롭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는 얘기일 터.     


자살률 최상위권에 있는 우리 나라에서 자살은 이제 쉬쉬하며 금기시할 화두도 아니다.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자살이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에 이제는 금기를 넘어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직시해야할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자살에는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어린 초등학생부터 인생의 마지막 장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르신들은 물론 한창 혈기 왕성하게 실패와 좌절을 넘어 도전하고 한계를 시험해봐야 하는 청춘 남녀까지 자살은 우리 주변 많은 이들에게 밀물처럼 스며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자살도 잇따르고 있다.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과 개혁의 기운을 불어 넣었던 정치인, 상큼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어리고 젊은 팬들의 인기를 누리며 살아오던 한창 꽃다운 나이의 연예인, 삶 그 자체로 사회에 모범을 보이며 존경 받던 저명인사의 자살은 특히나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왜 자살을 했는가. 선택의 문제인가, 생리적 병증으로 인한 죽음과 같이 정신적 병증으로 인해 귀결된 불가피한 죽음인가. 자살한 사람들에게서 직접 답변을 들을 수 없으니 그들의 마지막 족적을 추적해봐야 가늠해 볼 일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자살한 사람들의 치료 과정에서 대단히 큰 삶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적지 않았으며 자살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 역시 작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자살을 선택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그들의 자살로 인해 피폐해질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부채의식을 강조하고 무책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며 떠난 이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치료 기록을 보면 선택이라 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심리적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 죽음의 신호를 환청으로 듣는 경우는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도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 주길 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결국 자살을 단순히 선택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벼랑 끝에 내몰린 끝에 추락한 이들을 선택의 문제로 보아 비난하기는 힘들며 자살률이 급증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식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벼랑 끝에 내몰려 선택 아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돌파구와 탈출구를 만들어 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사회 도처에 만들어 주어 물에 빠진 이들이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구명튜브같은 장치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극단적 사고를 부추기는 경쟁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도 궁극적로는 변화가 필요하다. 삶의 다양성, 행복의 척도가 상대적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돈과 명예, 인지도, 사회적 관계망 형성 등으로 우리네 삶의 가치를 쉽게 재단하는 풍토 역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소유 보다는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리는 것, 부의 축적보다는 의미 있는 소비와 나눔에서 새로운 행복의 가치를 창출해 가는 사회적 각성이 전제 되어야만 벼랑 끝에 서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벼랑 끝에 서 본 적 있는가? 누구의 인생에도 벼랑 끝에 서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그들의 순간만은 아닐 터, 우리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순간이기에 위기의 순간 연대의 동아줄을 잡을 수 있는 장치가 우리 주변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벼랑 끝 상황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있어야 하고, 이는 자발적 ‘선택’이라는 선입견에선 생길 수 없는 감정이다. 산소 공급이 부족한 이들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고, 심장이 멈췄을 때 심페소생술을 시행해 주듯,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사랑과 포용으로 응급조치를 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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