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투쟁을 시작하다
부조리한 조직병폐 속에 죽어간 후배에게 속죄하며
3월초 내가 속한 지자체 9급 신규공무원이 유서조차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오전 반가를 쓰고 오후출근을 했을 때 같은 시 공무원인 남편이 직원의 죽음을 알려줬다.
그 직원은 도로긴급유지보수와 관련 보상 업무를 맡고 있었다. 제설제를 많이 사용하는 겨울철 빈번한 포트홀로 인한 민원이 60건 이상 적체되면서 시설직도 아닌 공업직 신규는 거칠고 원색적인 민원과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긴급복구 공사로 인해 이미 녹초 상태였는데 야간에 진행된 긴급복구 공사에 교통정체를 겪은 시민들은 공사 담당자였던 그 직원의 신상을 시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내고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올려 난도질 했고 결국 전도 유망했던 대기업출신 늦깎이 주무관은 삼십대 꽃같은 나이에 사랑했던 부모님 곁을 떠났다. 사기업 격무로 인해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을 낼 수 없어 박봉에도 선택했던 공직생활에서 오히려 부당한 업무분장과 직원인권보호를 방임해버린 조직의 무능함으로 인해 광기에 찬 악성민원에 마녀사냥까지 당하고
결국 누구보다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했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한 생명이 덧없이 스러져 갔다.
나는 사무실 책상에 납작 업드려 숨죽인채 오열했고 퇴근 후에도 쪼그라드는 가슴을 붙잡고 업드려 통곡했다.
미안했다.
안정되고 승진이 보장된 보직은 인맥인사들의 차지, 인맥도 줄서기도 못하고 일에만 골몰하던 어리숙한 나같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직은 업무가 적체되거나 조직이 정비되지 않아 인력도 갖춰지지 않은 말단 부서. 업무폭탄을 맞고 견뎌내거나 압살 당하거나 둘 중 하나.
나역시 550 억 공기업 예산을 혼자서 예산, 계약. 지출, 세입, 자금운영까지 감당해야했다. 신생공기업이라 모든 장부와 서류를 법률을 찾아보고 다른 공기업 사무실을 기옷거리며 혼자서 물어물어 기초부터 재정비해야했다.
육아는 거의 방치, 일년반 가까이 주말도 없이 일하다 결국 수차례 혼절과 공황발작, 식욕저하, 불면증, 고위험우울증. 항스트레스 호르몬 분비 체계 붕괴로 입원과 함께 일년간 휴직.
결과는 휴직에 대한 보복성 좌천 인사발령. 승진서열 추락, 병약자라는 낙인이 전부였다.
나는 약자에게 업무폭탄을 떠넘기고 대민 일선에 있는 직원인권은 외면한채 선출직 기관장의 입지다지기와 전시성 시책사업에 묻혀가는 일선업무 담당자들의 열악한 상황, 일부 무능하고 권위적인 간부공무뭔들의 노동착취와 전횡 앞에 두눈을 감았고 한때 몸담았던 공무원 노조마저 어용화되면서 속세를 떠나는 마음으로 음지 속에 웅크렸다.
나의 자포자기와 방관 이면에서 지속되어온 조직의 부당한 업무분장과 말단격무부서에 대한 집행부의 좌천성 인사, 비전문직렬 배치, 폭력적인 악성민원에 대한 무대응과 피해직원 방치...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공무원 조직의 병폐는 인맥인사와 그 밑으로 줄서는 자들,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조직운영으로 결국 소중한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지금 20년 넘는 공직생활 동료이자 반려인 남편이 또다시 본청과 부서장의 조직적 갑질로 수십억단위 본청실과의 부진했던 사업을 떠맡아 압살 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우리는 관련규정과 공무원 행동강령 갑질방지규정 등을 찾아가며 제도권 안에서 수개월째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농간은 우리를 압도하며 온갖 부실한 조직운영의 헛점을 이용해 우리를 고립시키고 위협해오고 있다.
갑질 조사는 매우 느리고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고 갑질의 농간은 노골적으로 위해를 가해오고 있다
남편이 불면증과 무기력증, 호흡곤란, 불안초조 증세로 괴로워하다 급기야 어제는 길에서 갑작스런 현기증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흑빛으로 나날이 퀭해지는 남편 곁을 지키면서,
베게 속 오열로 나를 참회시켰던 후배공무뭔의 죽음 앞에서, 이제 막 시작한 투쟁은 아직도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음지로 숨어들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아름다운 이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부폐한 조직에 압살 당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나는 나의 숨죽였던 마럭을 끌어 모아 죽어간 이들을 다시 기억시키고 쓰러져가는 연인을 지탱할 것이다.
내 힘이 다 하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