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시계가 많다. 수집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정신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계와 밀당을 한다고나 할까.
휴대폰이 손목시계를 대신하게 된 지가 언제인데 시계랑 밀당같은 소리를 하냐 할지 모르지만, 요즘 내 생활이 그런 걸 어쩌랴.
루틴의 시대라 할만큼 하루습관을 강조하는 책들이 차고 넘치는 유행을 따라 나도 새벽 5시부터 아침루틴을 정해놓고 있다. 아침 루틴의 시작은 핸드폰 알람 기능을 이용한다. 일단 눈을 뜨면 습관처럼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세면대에는 결혼 전부터 써왔던 낡은 탁상시계가 놓여 있다. 확실히 내구성 면에서는 예전 공산품을 따를 것이 없다. 건전지 힘이 다할 때 빼고 녀석은 한 번도 엉뚱한 시간을 가르킨 적이 없다. 비록 소리 나는 스피커쪽 철망 한 쪽이 찌그러지고 플라스틱 접지 부분에 세월의 때가 끼긴 했으나, 화장실 백색광 아래 녀석은 정확히 5시 1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순깐 첫루틴을 지켜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간단하게 입안을 헹궈낸다. 이렇게 첫루틴의 산뜻한 시작은 화장실 탁상시계와 함께 한다.
화장실에서 물을 비우고 부엌으로 가 비원낸 몸 속에 물 한 컵을 다시 부어 넣는다. 비우고 채우기로 시작한 아침은 그때부터 조금은 멀뚱해진다. 물론 일정 정리, 독서, 간단한 스트레칭, 아침식사 준비 등 정해진 루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은 집안 새벽공기는 어딘가 몸을 굼뜨게 한다.
그래서 준비해 둔 것이 부엌 벽시계다. 무뎌지는 몸을 재촉할 목적으로 부엌 시계는 늘 20분을 먼저 가고 있다. 물을 비우고 채운 것밖에 없는데 아침 시간이 벌써 이십여 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조작임을 알면서도 몸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다음 순서는 다시 안방으로 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체중계와 혈압계로 오늘의 몸무게와 혈압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쌓여가는 세월만큼 불어나는 체중은 후퇴를 모르고 전진만 해왔다. 그렇다고 체중감량을 위해 특별히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하는 것도 없다. 그저, 최소한의 양심으로 그날의 체중은 한 번정도 확인해 준다. 그리고는 안방 벽시계를 한 번 더 일갈해 준다.
20년 전 대학 친구가 결혼 선물로 보내 준 벽시계는 지난 20년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시간을 알려 왔다. 새벽잠이 없어진 후에도 출근 직전까지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는 걸 즐기는 남편이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하는 최후 기상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가 안방 벽시계인지라 이것만은 조작 불가 영역이다.
침대참에 앉아 혈압을 확인한 후 다시 15분 정도로 후퇴한 시간을 확인하노라면 엉덩이로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에 몸이 다시 침대 속으로 녹아내릴 것만 같다
아침 루틴의 성패가 갈리는 순간이다. 유혹에 넘어가 폭신한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그날 루틴은 날아가는 것이요, 유혹을 이기고 머리맡 돋보기를 챙겨 베란다에 꾸며진 카페로 진출하면 얼추 아침 루틴은 탄력을 받아 진행된다.
베란다 카페로 나가기 전 거실에서 간단한 몸풀기 겸 스트레칭과 몇 가지 기구운동을 하는 것이 원래의 루틴이지만, 최근 겨울 초입으로 접어들며 무거운 새벽공기에 한기가 더해지며 이 과정은 건너뛰기 일쑤다. 그래서 부엌 시계처럼 20분이 앞당겨진 거실 시계는 이제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게으름의 무게를 딛고 베란다 카페 의자에 몸을 묻으면 출근하는 날임에도 일찍 일어난 덕에 카페 의자에서 시간도 갖게 되는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베란다 카페에서만큼은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때문에 카페에 앉으면 핸드폰으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해 출근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한다. 캠핑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먼동이 터 오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입안에 알사탕을 굴려가며 서서히 단맛을 음미하듯 출근까지 남은 시간의 여유로움을 온몸으로 녹여 먹는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시간과 밀당하지 않는 이 진공같은 시간이 너무도 달콤하다.
감은 눈꺼풀 너머로 화사한 빛이 느껴질 때쯤 눈을 떠 집 앞 공사장 흙더미 위로 고개를 내민 해를 마주한다. 다시 시간과의 밀당을 시작할 시간이다. 진공상태는 열리고 살짝 데워진 아침 공기를 한껏 호흡해본다.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 후 다이어리를 펼쳐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고 생각나는 세부 일정을 추가로 적어 넣는다. 일정 정리가 끝나면 다시 한번 핸드폰 시간을 확인한 후 읽던 책을 펼쳐 속독으로 급하게 읽어나간다. 남은 시간까지 몇 장이나 책을 읽을 수 있는지 기록경기라도 하듯이. 이때부터 정말 일상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가 그렇지 않은가. 시간마다 채워 넣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 시간 안에 그것들을 완성하느냐 여부가 하루의 성패를 좌우하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마음 속 시계에 떠밀리듯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늘 하루의 승리는 시간이 가져가는 듯 하다. 단 하루도 뿌듯하게 시간을 꽉 채워 살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20분이 앞당겨져 있는 거실시계를 일별하며 부엌으로 들어서면 역시 20분을 앞서 달려가고 있는 부엌 시계가 식사 준비를 재촉한다. 허겁지겁 문어발식으로 달걀찜, 감자채볶음, 미역국 따위를 동시에 끓여내고 묵은 밑반찬 몇 가지를 차려 남편과 함께 시계와 눈치싸움을 하며 급한 식사를 끝내면 정말이지 출근시간이 턱밑까지 다가와 있다. 아침 설거지는, 유연근무가 아니어서 정시 출근으로 나보다 한 시간 여유가 있는 남편에게 맡기고 화장실로 달려가 20분을 더디게 가고 있는 화장실 시계에 위안을 받으며 양치와 세수를 마친다. 옷을 갈아 입고 주차장으로 달려가 자동차 시동을 켜면 정확히 7시 뉴스를 전하는 라디오 방송이 시작한다. 오늘도 정상궤도 안착이다. 물론 가는 중 갑작스런 추돌사고나 교통 체증만 없다면 오늘 아침은 무난히 정상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정해진대로 흘러갈 것이다.
아침마다 시계들과의 옥신각신이 무슨 허깨비에 홀린 사람마냥 미친년 널 뛰는 듯도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나태와 게으름에 묻혀버릴 시간들을 내 삶에 각인시켜 넣기 위한 일종의 안간힘이 아닐까. 시계들이 알려 주는 시간들은 조작될 수도 객관적인 표준 시각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내 일상에 맞춤형으로 맞추어진 이 시계들이야 말로 내 삶의 실질적인 시간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시간은 성마르게 나를 등 떠밀기도 하지만 반대로 달콤한 잠깐의 진공상태도 허용해 준다. 재촉하고 여유 없는 시간이 없다면 여유로움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계들과의 밀당에서 깨닫는다.
흘러가는 만큼 성과도 만들어 주고 실패와 좌절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동시에 멈춤과 쉼을 주는 것 역시 시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진동으로 맞춰놓은 알람을 알려오는 핸드폰을 켜보니 퇴근시간이다. 20분을 앞서가는 녀석들과 정시를 가르키는 녀석들 사이에서 저녁 루틴을 밀당할 시간이 되었다. 밀당 속에서 오늘은 또 얼만큼의 시간을 길어올려 내 삶에 녀석들을 각인시켜 넣을지, 또 얼만큼의 진공상태에서 쉼을 누릴지 미량의 흥분마저 느껴지는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