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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Aug 25. 2018

울릉도살이

울릉도에서 한달살기.

울릉도 1일차 8/18


9시 50분에 승선하는 포항발 울릉도 배에 탑승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출발 1시간 전에는 여객 터미널에 도착해야 해서 늦어도 8시 반정도 까지는 포항역에 도착해야했다. 8시 즈음에 도착하는 기차는 새벽 6:30에 부산역에서 출발해 동대구에서 환승해 포항으로 향하는 숨가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새벽 5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힘겹게 일어나 어머니의 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출발했다. 오늘따라 왜이리 신호가 자주 걸리고 차가 막히는지 새벽 바람부터 레이싱을 하시는 어머니께 문득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부산역을 도착한건 6시 25분. 주차장에서부터 캐리어를 들고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눈도 아직 덜 뜬 상황에서 달리기라니. 이번 차를 놓치면 배에 승선도 못하겠다 싶어서 캐리어 무게도 생각않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차에 올라서자마자 닫히는 문. 우와, 아직 울릉도 근처에도 못갔는데 벌써부터 식은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1시간 후즈음에는 환승을 해야하니 눈을 붙이지도 못하겠고, 책을 보자니 머리가 아파서 안될것 같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선 시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아, 너무 힘들다. 이래서야 을릉도 근처에도 못가보고 몸살이 날 지경이다. 무거운 몸을 끌고 도착한 포항 여객 터미널.                                                      

이렇게 맑기만한데 배는 왜 안뜨는 것인가...


  날씨가 얼마나 좋은지 구름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였다. 포항에서 구름 사진만 찍어도 행복할 것만 같은 날. 아슬아슬하게 기차도 탑승하고 햇님이 방긋 미소를 짓는 그런 상큼한 날. 역시 나의 여행운은 정말 오늘도 따라주는 걸까. 하며 행복에 겨워있던 그 순간.

“ 아아, 금일 9시 50분에 출발하는 여객선이 파도가 높아 기상청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추후 일정은 10시 이후에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현시각 8시 30분) 

역시 운명의 여신은 우리와 멀리 있는 것일까. 아침잠도 제대로 못자고 달려온 포항에서 이 무슨 천청벽력같은 말이란 말인가. 그래도 결항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걸까. 이참에 포항살이를 해야하나. 수많은 생각이 오가던 시간. 조용히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나마 날이 좋으니 시간이 지나면 모든 다 알아서 되리라.


새벽같이 출발했던 그 피로함은 다 물리쳐 버릴만큼 새에파란 이 풍경.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어디 외국에서나 보던 그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 아침부터 레이싱카를 몰던 엄마의 진지한 모습과 캐리어를 들고 경주마처럼 달렸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아 모든 것들은 이 풍경을 감상하라고 내게 그런 시련을 보내줬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합성한 듯한 구름과 하늘의 색감은 포항에서는 마주칠거라 전혀 상상도 못했기에 지연된 울릉도 배에 대한 원망도 사그라 들게 해 주었다. 평온한 산책을 마치고 한숨 돌리려 다시 여객선 터미널로 돌아오자 곧 승선이 가능할 거라는 문자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역시 날씨의 여신은 내 편이였던 것이다. 



울릉도. 날씨가 허락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의 섬.

이 고고한 섬은 우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통 포항에서 출발하면 약 3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를 무려 4시간 15분에 걸쳐 파도를 느껴야했다. 파도가 높아서 였던지 멀미약을 챙겨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울렁거리는 내 속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여객선 안을 뛰어다니며 화장실로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나는 토사물 냄새들, 칭얼거리는 아기들…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없었다. 배만 뜨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울릉도에 발도 못 붙였는데도 벌써 울릉도를 가야하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을 떠난지 12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울릉도의 발톱 근처도 못가본 사람의 심정이란…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숙소에 누워 장을 청할날만을 기다리던 순간 순간들이 모두 지나가고 드디어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어여쁜 해바라기호

도동항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첫 인상은. 어? 여기는 그냥 진짜 도시같은데? 부산같은 느낌아닌가? 여기가 그렇게 특별한 곳인가? 

주말이라 더 그렇겠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빽빽한 차들을 바라보면서 여기가 내가 아는 그 울릉도가 맞나? 싶었다. 인구가 만 명정도밖에 안되는 섬인데 이렇게 복작거리다니. 살짝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렌트카를 타고 10분여를 달리자 역시 이는 과오에 불과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울릉도의 진짜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매일 이런 풍경과 바다 내음, 풀내음을 맡을 수 있다니. 역시 오길 잘 한 것 같아. 정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끼리 바위

정말 공항만 건설된다면 제주 못지않은 관광섬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서 2주라는 시간을 지낼 수 있다는 꿈만 같다. 아직 시작도 못해봤지만 내일은 얼마나 더 신비로운 풍경들이 나를 반길까. 


첫 만남부터 너무나도 유쾌했던 우리 울릉살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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