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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Sep 11. 2018

D-2 하나씩 챙겨보자  

덴마크가 점점 가까워진다.


코펜하겐으로 떠나기 이틀 전이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동안 내가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에서 일주일 후면 일을 한다는 것도, 사실... 내가 서른이라는 사실도 믿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요리사라는 직업이 실상 칼과 근무복만 있으면(요즈음에는 셰프복이 아닌 티셔츠를 입는 게 추세라 그마저도 필요 없기는 하다.) 어디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덜 하긴 하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사가면 돈도 적게 들고 처음 가는 곳에서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그 핑계로 동네를 산책하면서 그곳을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워홀을 가기 전에 내가 꼭 챙기는 건 요리와 관련된 걸 빼고는 소화제나무 면봉. 

한국 소화제가 강한 건지, 한국인의 체질에 맞춰서 나온 건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외국제 소화제를 사 먹으면 속이 계속 더부룩한 느낌이 가시질 않아 꼭 사가는 아이템 중 하나다. 막 도착했을 때는 아무래도 예민한 상태인 데다 체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꼭 두 통씩 챙겨간다. 

그리고 나무 면봉.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외국에서는 면봉이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 잘 휘는데 어찌나 불편한지... 한국에서는 가격도 저렴하고 질도 좋기 때문에 2봉 정도는 가져간다.


처음 호주로 워홀을 떠났을 때에는 한국에서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들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민가방 2개에 도착해서 큰 택배로 2번이나 받았었는데 살다 보니 조금씩 줄어서 지금은 일 년 치를 싸는데 캐리어 하나에 (25-30KG 정도?)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로 그 부피가 줄어들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이 사사는 곳이라면 필요한 대부분은 현지에서 충당이 가능하다.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하면서 지내게 되는 게 사람의 습성이기도 하고.


아, 키로수를 줄이기 위해서 이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화장품은 면세점에서 사가는 것! 화장품은 인터넷 면세점을 이용하면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시기만 잘 맞추면 프로모션으로 사은품까지 받을 수 있기에 1년 치 사용할 화장품을 다 사간다. (그래 봤자 스킨, 수분크림, 선크림 2개씩 정도?) 일상이 맨얼굴이라 색조화장품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 지금 가지고 있는 색조 아이템은 이미 유통기간을 넘어 발효(?)가 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간 마음먹고 색조 쇼핑을... 


사람들마다 자기가 투자하는 분야가 다 다르듯이 나 같은 경우는 요리 도구를 사거나 맛있는 것들을 먹고, 여행하는데 돈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옷 같은 경우는 중고매장 등에 가서 필요한걸 사서 입고 귀국할 때는 대개 기부를 하고 오는데 그마저도 겨울철에나 하고 잘 사지 않는다. (한국에 오면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특히 유럽에서의 중고 시장 쇼핑은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한데, 딱히 필요한 게 없어도 보는 재미가 있고 그곳을 둘러보는 사람들과 파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활기차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이제 떠나기 이틀 전.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돌아와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조금씩 압박이 느끼기는 하지만, 또 묘하게 평안하기도 하다. 도착해서 눈을 붙일 공간이 마련돼서 그럴까? 

무급 인턴이라 3개월 동안은 그동안 모아 왔던 내 워홀 자금을 다 갉아먹기만 하겠지만, 그만큼 다! 척수까지 다! 쪽쪽 빨아먹고 와야겠다. 그 모든 것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내 레스토랑의 밑바탕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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