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날씨도 변덕이 죽 끓듯 하네요. 아침에 숙소에서 나올 때는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오후에 영화보고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옵니다. 연휴가 계속 돼서 그런지 거의 전 영화가 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네요.
어제 인상 깊은 다큐 <호루몽>을 봤어요. 호루몽이란 버리는 것이라는 어원을 가진 <곱창구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도축하고 버린 내장을 주어다 먹었고 그 당시에는 일본인들의 멸시를 받았다고 해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자이니치) 3세 신숙옥의 이야기입니다. 북송을 거부하고 끝까지 일본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 대단한 여성이고 직접 한국까지 와서 엄청난 박수를 받았습니다. 눈빛과 표정에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죽음까지 생각할만큼 고통스런 자이니치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생 끝에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극우 티비에서 신숙옥의 이름을 거론하며 모함을 하는 바람에 방송국과 소송전이라는 긴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 삼심까지 올라가서 이겼고 방송국으로부터 사과와 보상금을 받게 됩니다. 힘이 없는 고국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못하고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차별받으며 자란 그녀는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라고 외칩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함께 죽자고 목을 졸랐던 적도 있지만 그녀는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고 해요.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고 인상깊은 영화들이 몇 편 있습니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가을이 오면>은 프랑스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감추어진 가족의 비밀을 다룬 영화입니다. 제가 가장 선호하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도 개봉했으면 좋겠네요.
한국 영화 <캐리어를 끄는 소녀>는 그 누구도 관심을 써주지 않는 15세 소녀의 투쟁기입니다. 보육원에서 입양됐다가 양부모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다시 버려진 소녀는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려대지만 세상은 냉정하기만 합니다. 처음에는 그녀를 동정해 돕고자 했던 부인 역시 "세상에는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어, 그게 삶이야."라고 말합니다.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세상은 냉정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는 다른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개봉예정이라고 합니다. 개봉하면 꼭 보세요.
영화제에서는 처음으로 TV드라마가 선을 보였습니다. <당신의 맛>이라는 드라마는 방영 전에 전주영화제에서 에피소드 두 편을 선보였습니다. 굳이 전주영화제까지 와서 곧 방영될 TV드라마를 미리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아름답게 찍은 전주의 한옥마을 골목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고, 영화관에서 틈틈히 터져나오는 관객의 큰 웃음 소리는 함께 관람하는 훈훈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강하늘과 고민시의 실물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어요. 늘 함박 웃음을 터뜨리는 강하늘이 참 좋네요. 잘 생긴 척 하지 않는 털털한 조각미남.^^
그밖에 한국영화, <97 혜자, 표류기>, <만남의 집> 외국 영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발코니의 여자들>,<슈거랜드>, <추락에 대하여>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귀가할 때까지 앞으로 볼 영화가 8편 정도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