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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May 31. 2022

소공녀: 더 더 더

Apr-18

2018.04


           ‘무인도에 단 세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오래전에 잊혀진 질문에 쌓였던 먼지를 털어내보자.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고민을 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핸드폰과 컴퓨터, 책과 악기를 말하는 이는 있어도 속옷과 반바지, 반팔 티를 말하는 이는 없다. 속옷과 옷들을 잊은 이들이 모두 신체의 동등한 일조권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자들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들이야 이미 갖춰졌다고 생각할 테니까. 다시 말해 무인도로의 동반자에 대한 질문은 당신에게 가장 최소한의 사치품(minimal-luxury good)을 묻는 것과 같다. 

                         

 

            [소공녀(Microhabitat)]는 동일한 질문에 대한 주인공 ‘미소’의 답처럼 느껴진다. “위스키, 담배, 그리고 너(연인)만 있으면 돼.” 그녀의 필수(사치)품에 물건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닥칠 불행에 대한 복선처럼 들린다. 담배와 위스키는 값이 오를 뿐이지만 사람은 사람을 실망시키기에.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렇다고 사람의 자리를 물질이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연인의 자리에 커피 같은 것을 넣어본다면, 미소는 기름 대신 술, 배터리 대신 담배, 냉각수 대신 커피로 움직이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인 지도 모른다.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자신의 최소한을 말하는 미소의 태도다. 최소한에 대해 고민한다면 양 극단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의 ‘최소한’은 덜어내기 위한 경계선이 아닌 사수해야만 하는 마지노선이다. 많은 것들을 덜어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지 않다면 최소한에 대한 생각은 최대한 미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담뱃값이 오르고 위스키값이 올랐듯이, 지켜야 하는 것이 생기면 곧 그것을 빼앗으려는 시도 또한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스스로의 최소한이 무엇인지 묻는 함정에 빠지지 말고, 더 많은 것을 원해보도록 하자. 미소가 사랑한다는 담배도 한 번 피워보고, 한 잔에 무려 14000원이나 하는 위스키의 맛을 궁금해하도록 하자. 한 병에 4000원 밖에 안 하는 소주보다 3.5배 더 강렬할지도 모르지 않나. 위스키가 입에 맞았다면 위스키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겠다는 초라한 생각은 하지 말자. 돈을 더 악착같이 벌어서 저 앞에 있는 술들을 사버리겠다는 위대한 다짐을 하도록 하자. 그러고는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며 최근에 찾아낸 삶의 낙을 전수하도록 하자. ‘위스키 맛이 괜찮지 않아? 나랑 같이 졸부가 되어 최고급 위스키를 수집해보자!’  욕망은 사람을 살게 하는 동력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그것은 엄연한 준칙 행위이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따라 더 더 더 원해보자. 스스로의 microhabitat(소공녀)은 욕망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때 고민해도 늦지 않다.


https://youtu.be/AW5yIdbzD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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