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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두녕 Apr 04. 2022

목요일 밤의 달팽이

19-Aug

https://youtu.be/jfRxD3oLiQY

2019.08

매주 타주로 출장을 가는 나에게 있어 출근과 퇴근은 복잡한 절차다. 출근은 월요일 오전 5시 50분에 오헤어 국제공항을 향하는 리프트를 타면서 시작된다. 목요일 오후 텍사스 달라스에서 출발해 공항에 닿아 비행기를 기다렸다가 타고, 또 집까지 리프트를 타고 오는 것까지가 퇴근이다. 출근은 순식간이다. 반쯤 정신 나간 채로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눈을 대충 감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는 출근하기 시작한지 두 주 만에 좁은 이코노미 석에서 아침잠을 보충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퇴근은 출근길을 거꾸로 재생할 뿐이지만 매번 더 길다. 집에 가고자 하는 마음에는 어떠한 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3:00PM

          목요일의 일과는 아무리 늦어도 세시 즈음에는 끝난다. 걸음을 지체하지 않으면 네시 반 즈음의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금요일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날이기에 벌써부터 주말을 맞은 기분이다. 무인 조종 모드로 무념무상한 상태에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다. 어제는 시간이 좀 남아 라운지에 들러 위스키 한 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탑승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제서야 탑승구로 향한다.


4:00PM

          탑승 예정 시간이 다 되어 줄은 길게 늘어졌지만 아무도 비행기에 들어가지 못한다. 잠시 후 스마트폰으로 날라온 문자는 불행하게도 이륙 시간이 40분이나 늦어졌음을 알린다. 지연 사유는 목적지의 기상상황 악화라는 방송도 곧 이어진다. 줄 서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자리를 찾아 앉는다. 나의 마음은 아직 평온하다. 40분 정도야 뭐 애교 수준이다.


6:00PM

          40분으로 예정되었던 지연 시간은 20분을 두 번 더하고 30분을 더하여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운다. 나 역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예정 시간이 늦어지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소리를 만든다. 이를 통해 사람들을 세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분노형이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내뱉는다. 분노한 자들은 외롭다. 아무도 그들에게 말 걸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잔소리하는 엄마’형이다. 허탈하게 웃고는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t)'는 말을 이리저리 변주한다. 그러고는 옆 사람과 항공사/공항을 탓하는 대화를 시작한다. 세 번째는 ‘냉정한 이성파’형이다. 그들은 조용히 항공사/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다른 여정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통화대기를 하며 한숨을 내쉰다.


          나는 주로 두 번째 타입의 인간이다. 내 비행기가 늦어졌다면 다른 비행기들도 늦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옆 사람과 불만 섞인 대화를 시작하는 대신, 나는 시카고로 향하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예약한 나의 직장 동료에게 문자를 보낸다: 너도 비행기가 지연되었니? 답장은 순식간에 도착한다. ‘나도 비행기 안에서 2시간째 기다리는 중이야. 짜증나 죽겠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타인의 불행이 나를 위로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의 덕분에 조금은 더 행복해졌다. 적어도 나는 화장실은 불편하지 않게 갈 수 있는 공항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6:10PM

           미안한 마음의 지속 시간은 단 10분이다. 그녀에게서 또 다른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 이제 출발한다, 담 주에 봐!’ 오늘의 첫 번째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타인의 불행 때문에 즐거워한 사람의 말로가 이렇다. 죄책감은 물론 더 큰 불행이 찾아올지어다. 


6:15PM

           다행히 나의 비행기도 탑승을 시작한다. 빨리빨리 정신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도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며 한 손에 탑승권을 들고 줄을 선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전 우주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목베개를 하고 책을 하나 펴 놓은 채 창가 좌석에 앉아 이륙을 기다린다. 


6:30PM

           그러나 비행기는 출발하지 않는다. 활주로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비행기 수십 대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장은 우리 비행기의 대기 순서가 몇 번째이니 몇 분 안에는 출발할 것이라는 방송을 하더니, 약속한 시간이 지나자 결정타를 날린다. ‘음… 활주로에서 대기하는 동안 기상 상황이 다시 악화되어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대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사과의 말의 어미는 수백 명의 탑승객들이 일제히 내뱉는 탄식과 날숨으로 뒤 덥힌다.


           나는 비행기에 앉아 한자 그대로 비행(非行) 한다.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불쾌지수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책을 읽으려 노력하지만 글자가 눈에 영 들어오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욕설은 대부분 어떤 어떤 놈들, 무슨 무슨 자식들 하는 식인데, 사실 이 상황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번 항공기 지연은 순전히 날씨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목적지 없는 나의 네거티비티는 그저 소음이 되어 기내를 맴돈다.


9:20PM

            1시간 50분의 비행을 위해 2시간 50분을 기내에서 기다렸을 때 기장은 주저하는 목소리로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항공 규정상 3시간 이상 기내에서 대기할 수 없다고, 이제 모두 다 공항으로 돌아가 기다려야 한다고. 한계효용이 점차 감소하듯, 나의 한계 분노치(marginal rage)는 줄어들다 못해 음수가 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든 오늘 내로 집에 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하나둘씩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과연 세상에 기다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 생각해본다.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의 사람들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데도 행복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 기약 없는 기다림이야말로 반인간적 행위인 것이다.


10:30PM

           공항에 다시 도착한지 한 시간 만에 비행기에서는 다시 탑승 신호를 보냈고, 4시 반에 출발 예정이었던 시카고행 비행기는 10시 반에 드디어 활주로를 떠난다. 아마도 오늘 나에게 할당된 불행은 6시간 분이었던 모양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어떠한 안도감과 함께 잠들어 버린다. 비행기가 땅에 닿았을 때 시뻘건 눈으로 일어난 나는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리프트를 불러 집으로 떠난다. 


1:00AM

            시카고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이제 막히지 않는다. 리프트 안에서 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나는, 오늘만큼은 퇴근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를 기사에게 토로한다. 오우 잇츠 테-리블, 잇츠 테-리블. 미국인이 아닌듯한 기사는 적당한 추임새로 나를 위로하려 한다. 위로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말이 고맙지만 나는 동시에 어떠한 부족함도 느낀다. 나는 그의 허락을 구해 스마트폰을 차 오디오에 연결하고, 집으로 향하는 나를 위로해 줄 노래를 튼다. 익숙한 전주가 나오면 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본다. 오우 아이 라이크 디스 쏭, 이츠 어 굿 쏭. 기사의 코멘트와 함께 큰 눈을 가진 앳된 가수가 노래 하기 시작한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https://youtu.be/jfRxD3oLi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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