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두녕 Jun 05. 2022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JUN-22

2022.06
 

         다시금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듯 한 이유를 말하자면 삶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체중감량이 필요했고, 주말 아침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보내기 싫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에는 트레드밀에 올라 운동이나 좀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낸 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났고, 그동안의 제 성과에 만족합니다. 몸무게는 줄었고 체력은 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말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주말에 달릴 때는 주로 K리그1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몰아 봅니다. 코로나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맞이하게 된 취미입니다. 3년을 꾸준히 시청하다 보니 응원하는 선수들과 팀도 여럿 생겼습니다. 연고 구단인 강원, 매해 선수들이 바뀜에도 좋은 성적을 내는 김천, 뛰어난 감독을 보유한 포항과 뛰어난 선수들을 여럿 보유한 울산을 응원합니다. 하이라이트 영상 3편을 연달아 보면 45분 정도가 흘러 있습니다. 그렇게 6~7km를 뛰고 나면 지난밤의 음주에도 몸이 가볍습니다.

          가끔은 주중에도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말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트레드밀 위에 섭니다. 주말의 달리기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침대 위에 있는 것보다 생산적이기만 하면 됩니다. 주중에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해 달립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혹은 더 오래. 마음을 달리 먹고 케이팝이나 힙합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달리다 보면 주로 두 종류의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나는 ‘좋아 좋아 조금만 더’입니다. 주로 달리기 처음 시작한 10분과, 그리고 끝나가는 마지막 5분 동안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드레날린 분비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겠죠.

          두 번째는 ‘아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입니다. 달리기의 처음과 끝이 아닌 모든 순간에 위 생각이 종종 찾아옵니다. 한참 달려 숨이 가빠 오면 왜 스스로에게 능동적으로 고통을 부여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트레드밀 화면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STOP]과 [ +/- ] 버튼은 시련에 처한 이에게 너무도 큰 유혹입니다.

          달릴 때 드는 생각들은 삶에서 느끼는 잡념들과 닮아 있습니다. 달리기가 매력적인 운동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이 되었건 학업이 되었건, 무엇이든 처음에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하며 시작하곤 합니다. 그러다 다짐이 옅어지는 시간이 다가오면 쌓여온 귀찮음에 ‘무슨 부귀영화를 이루자고 이걸 하고 있는지' 묻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그만두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어찌어찌 마지막 순간에 닿을 때면 그동안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는지 채근하고 반성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달릴 때면 중간에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몸에 이상을 느끼지 않는 이상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킵니다. 이미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될지언정, 마무리를 짓는 습관을 기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행형인 일의 의미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태평양을 건너 시작했던 제 학부 생활과 지금까지의 삶처럼 말이죠. 만으로 30년이 되지 않은 시간 동안 가장 큰 변곡점이었던 사건이 어떤 족적을 남길지 아직도 완전하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시기'를 지나 보내자 새로운 막이 열렸으며, 지금은 그 새로운 장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꾸준하게 달리는 일이 제 삶에 끼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노년에는 닳아 없어진 무릎과 발목 연골 때문에 걷는 것조차 힘들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너무 열심히 달렸던 것을 후회할 수도 있겠죠. 반대로 이렇게 어디서든 꾸준히 달리다 보면 마라톤을 뛰게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따라준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씨 옆에서 함께 달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달리기를 마치고 하루키 씨에게 말을 걸고 싶습니다. “하루키 씨, 당신의 에세이를 읽고 달리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이 되었습니다.” 그럼 하루키 씨는 이렇게 답변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그건 참 멋진 일이군요.” 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씩 웃으며 차가운 맥주병을 부딪히고 싶습니다. 

          있을지 모르는 대화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꽤 행복해집니다. 달리기가 부여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제외하고도 달리는 일은 그 자체로 꽤나 즐겁습니다만, 저는 언젠가 나눌 수 있는 멋진 대화를 위해서도 달리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공녀: 더 더 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