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23
2023.07
여름의 행복은 테니스 공의 형태를 띤다. 주말 아침이 밝으면 운동과 세신을 마치고 냉장고에서 과일을 두어 개 꺼낸다. 야채 칸에서 풍기는 달큰한 향기가 벌써부터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싱크대에서 물로 가볍게 헹구고는 입으로 고대로 가져간다. 방금 씻었지만 과즙이 튀어 입가와 팔뚝을 끈적이면 오히려 더 좋다. 이는 당도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금요일 밤의 야식을 포기한다. 아침에 과일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 말이다. 바야흐로 복숭아의 계절이다.
달지 않은 복숭아는 미지근한 맥주와 같다. 법전에 미처 실리지 못한 죄악이다. 당도 높은 복숭아를 찾아 매주 토요일 오전에 열리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으로 향한다. 차로는 이십여분 거리의 일이다. 줄줄이 세워져 있는 간이 상가 사이사이 큰 폭으로 찍히던 발자국들은 과일 가게 앞에서 잦아진다. 백도와 황도 그리고 천도복숭아 모두 하나하나씩 시식해 보고 신중하게 집에 가져갈 녀석들을 가방에 옮겨 담는다. 옆에서 같은 종류의 복숭아를 주어 담던 고객 하나가 상점 주인에게 묻는다. “Is there a way to know which one is good? (맛있는 복숭아를 고르는 방법이 있나요?)” 주인은 답한다. “The same way you eat it. By putting it in your mouth. (먹어보는 수 박에 없죠)” 허무맹랑한 대답에 내가 소리 내어 웃자 그도 나를 보고 씩 웃음 짓는다.
숙련된 서퍼가 아무 파도에나 몸을 던지지 않듯, 복숭아를 입에 가져감에도 때가 있다. 아직 단단한 녀석들은 후숙 시킨다. 식탁 위 볕이 닿지 않는 곳에 과일들을 올려놓고 익기를 기다린다. 회사에서 가져온 애플망고와 오렌지 그리고 복숭아를 검은색 식탁 위에 배치 하면 그럴듯한 색의 조합이 완성된다. 폴 세잔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면 집이 아늑하다는 칭찬 대신 이젤을 세워놓고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할지 모른다.
바로 먹어도 될 정도로 말랑말랑한 복숭아들은 냉장 보관한다. 그들은 주말의 아침이나, 늦은 오후의 간식이 된다. 저녁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지도 만으로 4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하루의 마지막 식사로 오후 4시쯤에 단 음식들을 먹고는 했다. 아이스크림과 제과류 대신 요즘은 과일을 선택한다. 집에서는 복숭아를, 회사에서는 바나나와 자두, 블루베리를 골라 담는다. 아이스크림은 입과 혀의 즐거움이다. 과일들은 온몸의 즐거움이다. 더 정확하게는, 과일을 먹을 때면 몸이 과일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긴 달리기를 마치고 마시는 물에 온 몸이 반응하듯이.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애서 하루키는 말한다. 꾸준히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몸이 망고와 아보카도 같은 과일들을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내가 복숭아와 자두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은 일주일 동안 테니스를 치는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들보다 많기 때문일까. 오늘의 세 번째 복숭아를 물로 씻으며 생각한다. 몸이 하는 이야기들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그렇게 입에 넣은 복숭아가 유난히도 달콤할 때면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먼저 이번 겨울의 세찬 비를 견뎌내고 열매를 맺어준 복숭아나무에게 고맙다. 인고의 산물을 함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 씨앗에 붙어있는 과육을 꼼꼼히 떼어먹는다. 몇 달 전, 복숭아는 언제 나오냐는 나의 질문에 '원 모어 먼쓰'를 외쳤던 가게 주인에게도 감사하다. 덕분에 시큼하고 떫은 과일에 식욕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삶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큰 호수에 이는 잔잔한 파도처럼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고작 복숭아 한 알에 행복할 수 있어 감사하다. 4년 전에 썼던 일기 한 구절을 떠올린다. '사는 일은 미칠 듯이 바쁘고 정신없거나 죽을 만큼 무료하고 지루하다. 나는 그 중간에서 작은 행복을 만들어낼 뿐이다.'
찐득한 더위는 이른 저녁까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여름이 저물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얇은 셔츠 위에 가디건을 걸쳐야 하는 계절이 오면 가판대 위에서 달큰한 향기를 내던 복숭아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것이 너무도 아쉽지는 않다.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즐거움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제 지속가능한 행복이란 매일 또는 매주 복숭아를 먹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해 여름이면 복숭아가 익음을 아는 것 또한 지속가능함의 한 종류라는 것을 이해한다. 오늘의 내가 그랬듯 내년의 복숭아 한 알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가깝고 먼 미래의 복숭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다. 그동안의 시간들과는 둘 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다. 달콤한 복숭아를 먹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