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에 새로 배송되어 온 원두로 커피를 내렸다. 첫 한모금은 살아있음을 기쁘게 해주는 마법의 맛이다. 좋구나, 역시 ㅇㅇㅇ?
앗 이름이 안 이어진다. 얘 이름이 뭐더라?
예...예프...예카...급기야 에카쩨리나 러시안 이름이 떠오른다. 예브게닌...어쩌고저쩌고도 읊조려본다... ㅠ 안 되네 ㅠㅠ늙으면서 전두엽 세포가 점차 사멸한다던데 그 현상인가...여러 상념 속에 다른 기억들도 어거지로 불러낸다. 그럭저럭 시도하는 일들은 떠오르는데 어째 얘 이름은 안 될까...급기야 커피상점으로 들어가본다. 아 예가체프! 이 이름이 안 떠오르다니 ㅠㅠ
일찌기 미국 유학 다녀온 남편 덕에 원두커피와 인연된 지 30년이 훨씬 넘었다. 제법 긴 세월 동안 이것저것 마시다가 겨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커피를 찾은 지도 5년이 되어간다. 하루 한 컵은 특히 새벽에 첫 한모금은 하루를 여는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고 걱정하지 말자 다짐했던 일이 이제 눈 앞인데 이제라도 포기해야 하나?뇌세포는 소멸해도 뉴런은 결코 소멸하지 않기에 엄마가 그렇게 공부하면 치매는 절대로 걸리지 않을 거라는 딸의 격려를 받고 며칠 전에 사이버대학 편입을 확정했다. 솔직하게 겁이 좀 났다. 확실하게 선택하고 마무리를 책임있게 하는 걸 나름 신념 삼아 살아왔기에 이번 선택에 좀 깊은 고민을 했고 일단 시작해 보자 했다.
그런데...좀...많이...걱정된다.
비어 있던 지난날의 공간에 지금이라도 채워 넣을 수 있을까 해서 저지른(저지른 맞다) 일인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 같기도 하고 한편 백세 시대를 잘 살아내기 위한 방편인 거 같기도 하다.
커피 이름 해프닝에서 비롯된 이 염려가 다만 염려로 끝나기만을 바라는 한 여자노인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