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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할매 Mar 30. 2023

까르마 하나 정복한 날

길에서 깨달은 내 몹쓸 습관

새벽부터 분주했다. 손자의 등원 이전과 하원 이후만 보살피던 일과가 사돈의 여행으로 몽땅 내 감당이 되었다.

제법 멀리 있는 어린이집. 그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고 또 그 가까운 곳에 노인복지관이 있다. 나간 길에 도서관에서 밀린 강의를 듣고 복지관에서 시작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상담을 모두 해결하리라 마음먹었다. 오후엔 다시 아기를 데리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 등원을 마치고 부지런히 도서관을 향하는 길에서 문득 가방 안을 보고 싶다. 아, 커피 텀블러가 없네. 가지고 나오려고 일부러 선반에서 내려놓았던 건데, 그냥 나왔구나. 자책의 마음으로 계속 몇 걸음 가다가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이후의 내 모습이 훤히 그려진다. 집에 가서 못 다 먹은 밥을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다가 휘리릭 날아갈 몇 시간. 다시 가던 길을 걸어 도서관 옆의, 일찍 문 연 커피숍으로 들어선다. 잔잔한 음악이 환영하는 듯하다.

내 손으로 내려 마실 커피를 비싼 값을 치르고 예쁜 잔에 받아 마신다. 그리곤 이 시간을 전혀 다른 일로 보낸다.

잘했다! 돌아보면 뭔가 준비한 일이 미진하게 느껴질 때 준비 소홀했던 스스로를 탓하며 원점으로 돌아가곤 했던 습관이 있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지만 그 마음 때문에 다음에 올 일들을 아예 차단하곤 했다. 좀 부족한 대로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을 격려하는 자세로 밀고 나갔더라면 지금쯤 이렇게 배움에 헐떡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참 소중한 날 소중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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